물결 아래, 조용한 동거

물고기 관리와 합사

by 만년필

썸네일은 청소하던 손가락에 붙은 토종우렁을 구경하는 청자급 토좌금 유어다.


김 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베타라는 물고기를 소개받았다.

"이 아이 보이지? 태국에서 들여온 아이인데, 발색이 끝내줘. 김 씨 최근에 구피 시작했다며. 키워볼 생각 있어?"

몸을 덮을 듯이 자란 지느러미와 알록달록한 발색. 구피에게는 볼 수 없었던 개성. 김 씨는 순간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이틑 날, 김 씨는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다. 베타가 든 물봉을 양손에 쥔 채로.

김 씨는 베타를 구피 어항에 넣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베타랑 구피를 같이 키우기도 한다더라. 전문가들이 합사 가능하다고 했으니 되는 거겠지.


다음 날, 구피 성어들의 지느러미가 너덜너덜해졌고, 구피 치어들은 온데간데없었다.


1. 물고기 관리하기 - 합사

김 씨는 어떤 잘못을 했을까.

어떤 난제는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하지만, 어떤 난제는 전문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합사는 전문가만의 영역 중 하나다.

합사는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1. 키우는 물고기와 잘 맞는지

종이 다르면 특성이 다르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성격의 관계, 영역의 관계가 있다.

첫째, 포식자와 피식자의 완만한 합사는 기대할 수 없다. 제한적으로, 피식자의 은신처가 대량으로 확보된 환경에서, 소수의 희생을 감안하고 합사 하는 예외가 있다. (ex. 수초가 많은 어항의 새우와 포식자) 만약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입의 크기보다 작은 물고기를 만나면 무심코 먹게 될 수 있다. 그중에는 가물치처럼 입이 특별하게 더 커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한다. 자기 몸 크기 정도는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둘째, 성격이 다르면 훌륭한 합사 메이트가 될 수 없다. 보통은 소심한 성격의 물고기가 활발한 성격의 물고기에게 영역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ex. 레오파드 스테노포마와 안시 롱핀) 가끔 같은 종 내에서도 성격이 안 맞으면 합사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시크리트, 암컷 베타가 대표적이다. 또, 특정 종은 특정 개체수의 합사를 요구한다. 니모로 유명해진 흰동가리는 무리 중 한 마리가 성전환하는 경우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15마리 이상이 아니라면 2마리만 사육할 것을 권장한다. 2마리보다 많으면 2마리가 남을 때까지 따돌리고 괴롭혀 죽인다는 보고가 있다. 이외에 같은 성별만 사육해야 하거나,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종에 따라 다르다.

셋째, 물고기는 각자의 영역이 있다. 영역을 갖는 공격적인 종은 다른 개체를 영역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며, 대부분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미 어항의 사육 밀도가 충분하다면, 앞으로 좁아질 일만 남았지 넓어지거나 더 합사 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무리를 지어서 군영 하는 온순한 종이라도, 부대낄 정도로 많이 합사 하면 영역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영역에서 쫓겨난 물고기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다. 흔한 관상어는 아니지만, 이 분야의 대표는 문어다. 문어는 극단적인 영역 내에서 사냥하고 숨을 쉬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바다에 새 문어를 투입하면 영역이 없어서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새 문어를 투입하고 싶으면 원래 살던 문어들까지 다 빼서 영역을 새로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영역이 부족한 물고기는 사육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은신처를 추가로 제공하거나, 밥을 줄 때 영역을 분리해서 주거나, 강한 물고기를 단기 격리하는 과정 등이 있다.


2. 환경 여건이 허락하는지

엄연히 물고기가 더 들어가는 행위가 합사다. 당연히 어항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첫째, 어항 크기와 여과력이 받쳐줘야 한다. 어항이 작으면 영역 문제도 생기지만, 물고기의 성장에도 방해되고, 다툼을 더 유발하고, 오염이 더 쉽게 된다. 그래서 부득이하다면 여과력이라도 맞춰야 하는데, 여과 한계를 넘길 정도의 대규모 합사는 독성물질의 축적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입문자 단계에선 어느 여과력에서 어느 규모가 가능한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여과력에 있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둘째, 수온과 pH 등의 환경이 서로 맞아야 한다. 대부분의 어종은 각자 최적의 환경이 있다. 다종 합사는 기본적인 타협과 양보를 포함한다. 그러나 양보가 과해지면 어항에도 문제가 생긴다.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한 종만 빨리 자라서 크기 차이가 생기면 먹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커진 물고기는 더 많은 사료를 먹기 때문에 성장 차이를 점점 더 크게 만든다. 이러면 사료의 불균형으로 작은 물고기들에게 문제가 생긴다. 양보가 가능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양보조차 불가능하다. 사는 환경이 극단적으로 다르면 합사 할 수 없다. 예시로, 필자는 레오파드 크테노포마를 사육하면서, 잔반 처리 목적의 청소 물고기를 들이고자 했다. 목표 중 하나가 로얄 팔로웰라였는데, 고요한 물에서 서식하는 레오파드와 다르게 강한 수류를 요구한다. 그래서 레오파드의 합사 메이트로 조용하고 수온 요구가 덜한 레드 리자드로 선택해야 했다.

셋째, 어항 장식에 주의해야 한다. 새우와 시크리트 코리도라스 모두 바닥재를 요구하지만, 새우는 발디딤을 위해서, 시크리트는 집을 지을 때를 위해서, 코리도라스는 바닥을 훑는 습성 때문에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반대로 대형어처럼 오염물이 걱정되어 바닥재를 놓지 않는 경우나, 금붕어처럼 바닥재를 입에 머금다 뱉는 습성이 있어서 위험한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종은 샌드류를, 어떤 종은 소일을, 어떤 종은 흑사를, 어떤 종은 산호사를 요구한다. 블랙워터나 청수 여부도 중요하다. 번외 개념으로, 거울과 같이 비치는 장식이 있으면 베타가 플레어링을 할 수도 있다. 원치 않으면 합사 하지 말자.


2. 물고기 관리하기

양식과 사육은 일맥상통한다. 레비의 교훈 WIDE를 기억하자.

W : Work 열심히 일한다.

I : Inspection 항상 확인한다.

D : Dedication 정성을 다한다.

E : Experience 경험을 쌓는다.


W. work :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예상 밖의 일로 물고기가 봉변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고는 항상 안일할 때 찾아온다. 환수하기 귀찮은 날 '괜찮겠지'라며 하루를 넘기면 꼭 문제가 생긴다. 물맞댐 없이 '괜찮겠지'하고 즉시 투입하면 문제가 생긴다. 단지 사고란 것은 우리가 '괜찮겠지'로 가한 압력을 물고기가 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고기를 관리할 때는 사람을 대하듯 관리하면 안 된다. 고양이가 된 기분으로 정해진 루틴을 따라줘야 한다.

그러므로 열심히라는 의미는 '정해진 대로 꾸준히'를 말한다. 관리가 꾸준해야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다. 환수를 한 번 거른 어항에 예기치 못한 변화가 생기면 '환수 때문인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게 만약 히터 고장이었다면? 사료를 먹다 뱉거나 누군가 죽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때부터는 환수가 별 의미 없다. 골든타임을 놓친 거다.


I. Inspection : 항상 확인하는 것은 두 번째로 중요하다. 물고기는 당일에 당장 사고 나는 경우가 흔치 않다. 히터 고장이나 어항 물샘 같은 외부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리 심한 문제라도 당일 큰일 나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어항을 관찰할 때는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을 확인받아야 한다. 경험 관련해서는 E에서 언급하겠다.

관찰은 설비 상태, 어항 상태, 물고기 상태, 사료 상태를 보면 된다. 설비는 단순 고장이나 오작동 문제를 보면 되는데, 흔치 않다. 어항 상태는 물샘이나 기울어짐을 확인하면 된다. 물고기 상태는 중요하니 따로 다룰 예정이다. 사료는 이전과 다른 냄새가 나거나, 색이 바래지 않으면 된다.

물고기는 다양하게 점검해야 한다. 주로 걸리는 병을 조사한다. 이를테면 붕어는 수질이 나쁘면 꼬리 혈관이 핏대를 세우고, 심하면 등 지느러미까지 충혈된다. 유영할 때 부레 문제(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처럼 움직인다)가 없는지 관찰한다. 다음으로 피부 비늘과 아가미, 항문 주위를 관찰한다. 사람과 물고기의 소통은 뭔가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꺼림칙한 눈빛이 교환되면 무시하지 않는다. 갑자기 주인을 피하거나, 겁에 질려 있거나, 또는 다가와서 물을 튀기거나, 자꾸 눈동자를 돌리는 등의 이전과 다른 모든 반응을 살핀다. 겉보기에 이상이 없다면 안심해도 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도 억울한 일이 있듯이 용궁에도 그러한 일들이 있는데..

전공자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물고기가 외부 증상을 보이는 시점이 이미 중증까지 진행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선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 흑점이나 기생충처럼 육안으로 감염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그나마 낫지만, 피부가 무너지거나 물고기가 뒤집힌 순간부터는 어떠한 민간요법도 독이 된다. 반드시 수산질병관리원의 수산질병관리사에게 문의하고, 올바른 약재를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높은 확률에 기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올바르게 관리하고, 적절히 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찾고, 항상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질병들을 외우고 초기 증상을 어렴풋이 진단할 수 있다면, 저러한 억울한 일도 해결할 수 있다. Inspection이란 물고기와 어항에 대한 건강검진이나 다름없다.


D : Dedication : 정성은 W와 I의 효율을 높여준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건강검진을 대리해 주는 일은 상당히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내 손으로 내 자식 건강검진 맡는 일은 전공책을 다시 엎어볼 정도의 대규모 공부도 감사하게 해 준다. 그러니 애인이든 자식이든,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애착을 형성하는 일은 사육자로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오죽하면 부모님 모시듯 관리하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보면 알겠지만, 물생활의 일부 중에 일부를 입문자 레벨에서 정리해도 이 만큼의 방대한 양이 나온다. 그러므로 물고기를 고수처럼, 아무 문제도 없이 키우고 싶다면 정성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물태기가 온다. 물태기는 물생활 + 권태기의 합성어로, 모종의 이유가 물생활을 귀찮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I를 지나치게 폄하하도록 만든다. 당연히 어느 순간 사고가 터지고, 물생활을 접게 되는 가장 큰 환불 사유 중 하나가 된다. 밥 먹는 모습만 보고도 흐뭇해야 사랑할 수 있다고 하던가,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E : Experience : 경험은 고수가 되는 길의 모든 것이다. 물고기가 언제 괜찮은지, 이대로면 얼마나 더 괜찮은지, 어디가 문제인지, 어디가 얼마나 더 오래갈 수 있는지, 언제 어떤 일이 터질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모든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당장 입문한 사람에게 '당신 물고기 꼬리지느러미의 백점이 내일이면 괜찮아질까요?'라고 물으면 입문자는 '백점이 왔다고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백점을 치료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음..' 하더니 메틸렌블루 한 숟가락을 풀어줄 거고, 고수는 '아 뭐야 백점이네. 괜찮아요'라고 말하곤 메틸렌블루 통을 기울여 '이 정도면 됐어요'라고 할 거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 앞으로 어항이 2일은 괜찮아야 주말에 여행이라도 다녀올 것 아닌가? 입문자는 어항이 터지진 않았을까. 물고기가 사고를 당하진 않았을까 노심초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사육자도 행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 머리로 기억하면 더 좋지만, 약재와 같은 민감한 사항은 세심히 기록해 두는 것이 낫다.


종합해서, 물고기는 매일 관찰하고, 어항 시설은 매주 관찰하는 것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기록한다. 이를 기반으로 변수에 대응하고 사육법을 개선한다. 이것만 지켜도 물고기를 안전하게 키우는 훌륭한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드리면서 '물결 아래, 조용한 동거 - 합사에 관해'를 마친다.

다음 주에는 '비늘 아래, 말 없는 아픔 - 상비약 꼭 필요할까'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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