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

미학과 쾌락의 주관

by 만년필

(1주 차 참조) 광릉 수목원에서의 깊은 경험 이후,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방황하는 흔한 범부가 되어 있었다. 세팅된 카메라로 지나가다 휙 찍힌 사진으로 본 재미도 순간이었다. 그저 '언제쯤 저런 사진 한 장 더 건질 수 있을까?'라며 찍고 지우기를 수백 번. 나는 식어가는 열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1. "괜찮을 거 같으면 찍고, 아니면 말지 뭐."


휴식이 오히려 도움이 됐을까? 카메라를 내려놓고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사진 각을 찾다 보니, '지금 당장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 온갖 잡생각이 허락 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찍으면 예쁠까?'

'저건 여기서 찍으면 예쁠까?'

'예쁜 사진은 뭐지?'

'나한테 예쁘면 예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과 철학을 고민하던 어느 날이던가, 처음으로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운 순간이 왔다. 아쉬운 날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이 아쉽기 시작했다.


2. 그때부터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정석인 사진을 고집했다. 어떤 것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그 본연의 미가 살아 있는 사진. 그건 어떠한 실험적 시도나 편집 기술이 아니라 구도와 색감으로 승부하는 사진이었다.

KakaoTalk_20250703_234121888_03.jpg 폭죽

내가 느낀 사진의 묘미는 '눈으로 봐서는 이렇게 예쁘지 않았는데 카메라로 보니 훨씬 예쁜 모습'이었다. 그건 순간포착의 개념이자 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렌즈의 정신이 반영된 결과였다.

사진 참 예쁘다는 감정은 데이터처럼 쌓였다. 나는 연애를 글로 배운 인공지능처럼 아름다움을 쫓았다. 그 결과 내 앨범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직접 보니까 역시 예쁘기는 한 사진'으로 가득 찼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은 자신감을 채워 주었고, 나는 내 사진도 먹힌다는 확신을 가졌다.

3.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뛰어들었다.

KakaoTalk_20250703_234121888.jpg 일몰

그래 이거야. 싶은 사진들을 보면 '맛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익숙한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초심자의 행운으로 알고리즘을 타는 행운을 겪었다. 익숙한 맛, 팔로워들이 좋아하는 맛을 올리면서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는 교류하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시각과 촬영 기법, 연출과 구도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길거리에서 포착할 수 있는 사진이 늘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속은 공허했다.


4. 그 안에 내가 없었다.


예술이 '타인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행위'라면 내 인스타그램 사진은 예술이었다.

그러나 예술이 '자신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라면 그렇지 않았다.

KakaoTalk_20250703_234121888_01.jpg 일출

공허함은 곧 실험적 사진에 대한 욕구로 다가왔다. 이런 사진을 하나 건지면 '나도 사진가'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사진을 찍으면서 나 스스로 사진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예술에서 금전 다음가는 애로사항이 주위 시선이라고 했다. 좋든 싫든, 내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시점부터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사진작가라고 불렀다.

KakaoTalk_20250703_234121888_02.jpg 몽상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주신 말씀이 있다.

"이름 석자 뒤에 작가가 붙을 준비가 되었어?"

그 장소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극적인 응원으로 들렸던 말이, 집에 돌아와 시를 정리하면서부터 '작가라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라'는 말로 돌아왔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아무 깨달음도 없이 작가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견딜 자신도 없었다.


(3주 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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