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행복 아니겠는가.

이젠 너희들이 넘치게 준 행복을 많이 덜어가도 괜찮아.

by 구자룡
아이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가 아내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는 못한 탓이었다. 실은 아이가 안쓰러워서 그렇지 그게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이가 최선을 다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기도 했고, 우리 아이가 그 결과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내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무엇이 그렇게도 미안하다는 말인지...


실은 아이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준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아이들로 해서 그렇게나 크게 웃어보고, 아이들로 해서 부모로서의 삶의 의미가 더욱더 커진다는 걸 모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공부 잘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자라서는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해지는 그런 삶들만 부모들이 원하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아내와 나는 부모로서 아이들이 스스로가 행복해 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이 유명해지면 좋겠지.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롭다면 좋겠지. But... 아이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 또한 부모로서의 행복이다.


아내와 나는 가끔 아이들이 미안하다고 하면 이런 말을 해준다. '너는 이미 엄마와 아빠에게 넘치도록 큰 행복을 주었으니, 이젠 조금 덜어내도 괜찮아.'라고 말을 해 준다. 실제로 아이들은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에게 너무나 큰 행복을 주었다. 그거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넘친 행복을 조금씩 덜어서 스스로의 행복을 채워가도 된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다들 성인이 되었다. 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성인이 되었다. 아직은 보호해야 하고, 지켜봐야 하고 때론 그네들의 인생에 개입해서 뭔가를 세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겠지만, 이제는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엔 우리 막내가 약간 응석 비슷하게 아내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는 게 어렵다고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큰 애가 이젠 엄마, 아빠한테 그런 이야길 하지 말고 스스로 극복해가라고 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그걸 들어주고, 때론 도와도 줄 수 있다는 자체가 나름의 행복이란 걸 큰 애와 막내에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 또한 부모로서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