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자룡 Dec 18. 2021

커피 마시는 게 뭐라고 이렇게 의미를 주어야 하나?

그래도 즐겁지 아니한가.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건 거의 건방 떠는(?) 짓거리라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믹스 커피에 길들여져 있었다. 한참을 마셨다. 출근과 동시에 믹스 커피 한잔에 동료들과의 대화는 직장생활의 낙중 하나였다. 그렇게 마시던 커피가 언젠가부터 내려 먹는 커피로 바뀌었지만, 커피를 내려서 설탕과 프림을 같이 넣어서 또 그렇게 한 참을 마셨다.


아주 오래전에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나는 스타벅스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엔 지방 근무여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미국 출장길에서 당시엔 그렇게나 유명한 브랜드 인지도 몰랐지만,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사 들은 커피가 내가 처음으로 마셨던 스타벅스 커피였다. 그렇게나 쓴 맛의 커피였는데, 출장에서 복귀한 후에도 이게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블랙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스타벅스 커피도 가끔은 마시긴 했는데, 당시만 해도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건 거의 건방 떠는(?) 짓거리라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가 부장님용으로 내려놓은 커피를 부장님 부재중에 직원들과 나누어 마시는 수준으로 커피를 마셨다. 어쨌든 블랙커피를 마셨다. 그러다가 커피의 주종목이 스타벅스 커피로 바뀌면서, 우유를 약간, 세 방울 정도, 넣어서 마시는 걸 주 종목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한 참을 마셨다. 아마도 거의 십여 년 일 듯하다. 이젠 커피잔을 들고 출근을 하는 것도 일상의 모습이 되었고, 게다가 멕시코에 근무를 하면서 근처에 스타벅스는 단골 수준이 되었고, 매일을 그렇게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일상이 되었다.


스타벅스 직원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나의 커피 취향으로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전에 커피를 내놓을 때 까지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커피를 주문하니, 그 친구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커피로 사전 준비(?)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타벅스 직원분들과 친해지고 (물론 멕시코 사람들이다.) 나의 커피 취향은 그렇게 또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나의 커피 취향은 출장이 큰 분수령이 된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나의 커피 취향은 출장이 큰 분수령이 된 듯하다. 멕시코에서 근무 중에 콜롬비아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콜롬비아에 출장을 가서 콘퍼런스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콘퍼런스 일정을 마치고, 한두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게 후안 발데스라는 커피 브랜드의 카페였다. 빈속이어서 그냥 빈속에 가끔 마셨던 카푸치노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그게 또 대박이었다. 이렇게 나의 커피 취향은 카푸치노로 바뀌었다.


나중엔 멕시코 시티에서 맛진 카푸치노를 찾기 위해서 카페 순례를 하기도 하였다. 커피로 인한 삶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다가 한 작은, 아주 작은 카페에서의 카푸치노가 나에겐 너무나도 잘 맞아서 단골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발령이 났다. 11년 만의 멕시코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였다. 내가 없었던 그 11년 동안 한국의 커피 산업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즐거웠다. 내 입맛에 맞는 카푸치노를 만들어 주는 브랜드가 주변에 많았다. 그렇게 또 한국에서의 카푸치노 순례를 한 2년여 한 듯하다.


그리고, 다시 멕시코. 나는 나의 선택에 의해 다시 멕시코로 왔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찾아놓은 보물 같은 카페는 멕시코 시티에 있는데, 나는 지방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카푸치노의 카페를 찾아야 하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결국 스타벅스의 카페 아메리카노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스타벅스의 카푸치노는 나에겐 영...


장소의 운치를 찾는 것 또한 나의 즐거움이다.


지금의 나는 카페 아메리카노(스타벅스)를 마신다. 그렇게 또 스타벅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 또한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아내와 나의 커피 취향이 같아졌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내는 스타벅스의 카페 아메리카노만 고집한다기보다는 카페 네그로 라 하는 게 맞다. 나는 둘 다이다. 카페(테리아)와 커피 둘다가 충족되는 장소를 찾는다. 장소의 운치를 찾는 것 또한 나의 즐거움이다.


실은 커피의 취향에 대한 변화가 인생에서 그렇게나 큰 의미를 갖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나의 나이 정도 된다고 하면 삶의 작은 변화에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 느낌이다. 나의 경우 하루에 딱 한잔 (스타벅스로 치면 알토 사이즈)만 마시기에 그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때론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들고 다른 직원을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 것도 낙이다. 나이가 들으니 말이 많아져서 인지, 아니면 행복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지나쳐서 순간순간에 낙을 찾으려 의미를 부여해가는 걸 즐기는 건지 나도 이 나이 되도록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가 나이가 많음을 인정키 어려우니 그냥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아직은 직장인이니 젊은 시절의 열정, 아니 나는 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렇게나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나고, 열정이 늘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성격을 주신 우리 부모님들께 감사한다. 내가 이런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앞으로의 나의 삶을 아주 크게 변화시킬지 아닐지는 아직은 모르겠으나, 만약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일의 크고 작음보다는 시간, 즉 지금을 행복하게 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는 나의 나이에 비추어 배부른 소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나는 지금 멕시코에 있다. 여기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건강만 하다면 나이는 상관없다. 무슨 일을 하든.


멕시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데, 내가 웃지 않고 배길 자신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멕시코에 있다. 주변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데, 내가 웃지 않고 배길 자신이 있겠는가? 게다가 커피가 맛도 있다. 평생에 술과 담배를 끊어본 경험도 있고, 이후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생활을 유지 함에도 하루 커피 한 잔이라는 즐거움이 있어 술과 담배가 주는 즐거움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