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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Apr 11. 2022

4. 회사에서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좋은 건가?

‘못됐어. 그래도 일은 잘해.’ (?)

‘착한 인재상’을 추구하는 회사도 없다.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만약 우리 조직에서 ‘000는 참 착해.’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게 칭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어떤 사람이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칭찬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말을 하는 당시엔 ‘착하다.’는 칭찬으로 한 말일 수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 그게 결코 칭찬이 아님을 알게 된다. ‘너무 착해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에서 내가 겪었던 회사생활에서 정의되는 ‘착하다.’의 정의는 이거다. 물론 이 정의의 시각은 상사 관점이다. ‘답답하다. 타 부서와의 경쟁에선 언제나 진다. 경쟁 상대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승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구다. etc.’


‘착하다.’라는 단어의 정의가 어떻게 이렇게나 곤두박질 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대에는 그랬다.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사업에도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무한 아니 극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항상 경쟁을 하면서 그렇게 이기는데 익숙해야 한다고 배운다. 나는 멕시코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 왔다. 그러다 보니 애들 교육도 고등학교까지 여기서 하게 되었는데, 우리 애들이 크면서 경쟁이란 느낌을 가진 기억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한 분야에서 이기면 다른 분야에서는 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 몰지는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는 아이는 지는 아이대로, 이기는 아이는 이기는 아이대로 나름의 강점을 찾아서 개발하고 참여하는 그런 과정을 겪어온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다. 각각의 분야에서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보니 모두가 승자가 되는 구조가 된다.


‘착한 인재상’을 추구하는 회사도 없다. 최근엔 다소 달라지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기업이 사회 공헌이나 그런 제도적으로 기업과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가는 시도가 있기도 하지만 회사 안에서 개인으로서의 직원은 ‘착하다.’라는 소릴 듣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독하다.’라는 소릴 듣는다면 ‘능력있다.’라는 뉘앙스가 따라 온다. 드라마를 봐도 착한 사람은 영 답답하다. 왜 그런데?? 라는 소리가 뇌에서 막 울려 퍼진다. 그러다 순간 옳은 말을 막 질러대면 사이다라 한다.


‘참, 못됐어. 그래도 업무는 빠르게 잘해.’


실은 착한 사람들, ‘착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잘되어야 한다. 그런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뭘 할 수도 없다. 당장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점진적 발전이라도 추구해 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착한 사람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착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가상에서 구현하고 이를 발전시켜 가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극히 소수에 해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많은 회사에서 ‘착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더 나가기 전에 분명한 것은 사람은 착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이걸 기본으로 두고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만약 직장에서 알게 모르게 ‘착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들은 ‘못됐다. 독하다.’라는 소릴 듣는 사람들이 주로 듣는게 무엇인지를 보면 된다. ‘참, 못됐어. 그래도 업무는 빠르게 잘해.’ ‘독해. 그게 팀에 도움이 돼. 타 팀하고 경쟁해서 지는 법이 없거든.’ 이런 소릴 자주 듣게 되는데, 착한사람들도 들으면 된다. 회사 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강점 분야를 아주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주 착해. 데이타 분석도 탁월하고, 정말 잘해.’ ‘그 친구 참 착해, 골프도 싱글이야.’ ‘착해. 주변사람들을 그렇게나 도와 주면서도 자신의 일도 잘해.’ ‘착해. 보고서 작성도 탁월해. 용어 선택을 아주 잘해.’ ‘착해. 외국어도 3개국어나 해. 열심히 해.’ ‘착해. 그러다 보니 주변 관계가 좋고 해서 판매도 잘해.’ ‘착해. 춤도 잘춘다던데.’ 등등등으로 자신의 강점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탁월하게 만드는 건 직장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착하다.’는 의미가 왜곡되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착하다’는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도 말그대로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가 되어야 한다. 매일 당하고, 할말 못하고, 경쟁에서 처지고…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리더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독한 사람도 필요하고, 착한 사람도 필요하고 어떻게 보면 이런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끌어가야 하는 가는 리더의 역할에 달려 있다. 조직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의 구성원들을 조화롭게 운용해가는 그런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착하다.’ ‘못됐다.’로 잘라 구분하기보다는 조직에 어떻게 기여하고, 그 기여를 통해 각 개인은 어떤 발전을 이루어 내고 하는 것 자체가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조직에서의 리더의 역량에 주목한다.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하는 리더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보면 착하다. ^^ ‘착해. 판매 목표에 대해서는 너무 집착해. 그래서 매번 목표는 달성해.’ 이게 내가 상사들에게 듣는 말이었다. 그리고, 멕시코 주재원이 되면서 본사 직급과는 다르게 작은 해외법인의 임원이 되었다. 멕시코에서 현지법인의 고위층(?)이 되었을 때 나의 리더십에 있어서 1순위는 판매목표 달성이었다. 판매목표를 달성한 직원은 착했다. 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못됐다. 그렇게 밀어 부치다 보니 법인의 전체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게 나의 기준이었다. 직원 개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이 착하고 못되고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판매목표만 달성하면 되었다. 리더로서 참 못난 리더십을 가진 리더 였다.


그런데, 법인장으로 있을시에, 어느날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우리 총무팀에 나를 만나러 왔는데, 연락도 없었고 한데 만나 주실까라는 문의를 했다고 한다. 우리 총무매니저가 ‘법인장이 좋으신 분이라, 그냥 들어가셔서 이야기하면 들어주실 것입니다.’라고 이야길 했다는 것이다.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구나로 잠시 우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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