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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Mar 28. 2020

세월

나는 아직도 젊어야만 한다.

실은 나는 나이가 들어가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Time flies. 세월은 참 빠르다. 내가 태어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을 훌쩍 넘어섰다. 내 나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은 건 아직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이,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나이를 숫자로 못 박고 싶지 않아서 이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자꾸 늘어나는 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를 일에 파 묻혀 살아왔다는 의미다. 일도 하고 싶은 일이었었고, 일에서 보람도 찾았고, 일에서 성취도 느꼈었다. 그런데 이젠 일을 넘어서서 보니 너무나 많은 하고 싶은 일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걸 다 하려면 나는 아직도 젊어야만 한다.


실은 나는 나이가 들어가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커가고, 나 역시 철들어가고 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철이 들어가니 인생이 살만 했다. 철이 들어가니 주변도 보게 되고,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니 좋았다. 전혀 극복되지 않게 보였던 어려움도 세월이 가고, 세월이 가면서 마음도 커지니 극복이 된다. 감사할 줄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뵈면서 이제 늙어가시는 구나라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40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아버지가 40대 시라면 나는 10대다. 원한다 해도 그렇게 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설사 된다 하더라도 나는 1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정말 가능하다면 마음이 바뀔 수도 ^^ - 지금 나는 철도 들어있고, 운전면허도 있고, 학교도 졸업했고, 군대도 다녀왔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아이들도 있다. 지금 이 상태가 좋다. 인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런 지금의 이 나이가 나에겐 좋다. 웬만한 일로는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나이다. 


참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어려운 상황으로 많은 분들이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가슴이 아파 본 적이 있었다. 소위 어떻게 할 수 없는,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슴에 통증이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건강검진에서는 잡히지 않는 고통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화병이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병이라 하는데, 명칭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나라 사람들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진짜 화병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화병으로도 나는 많이 배웠다. 그리고 철이 더 많이 들었다. 극복해 가면서 제일 먼저 나를 설득했던 건,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였다. 나만 이런 고통 속에 있지는 않다는 거였다. 크게 보면 나 하나만 겪는 고통이었으면 하고 바라야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는 안되더라. 결국 나만 이런 고통 속에 있지는 않다는 걸로 나를 인식시키고, 극복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나는 극복했다. 그리고 내가 할 일들,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나간다. 아내의 말로는 예전의 눈 빛이 돌아왔다고 한다.


만약 내가 지금의 세월을 안고 있지 않았다고 하면 나는 그냥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내가 가진 세월의 힘이었다. 세월은 빠르다. 참 빠르다. 이 빠른 세월을 어떻게 잡아 세울 수도 없고, 잡아 세워 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렵지만 굳이 산술적으로 계산을 하자면,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3년 걸려 하는 일들을 1년 만에 끝낸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주어진 세월은 다른 사람의 세배일까? 일의 기준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까?


나의 삶을 그렇게 양식 안에 채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나는 단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세월을 잡아보려 한 것이다. 항상 그 순간에 내가 목표로 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그런 결심이었다. 질문지를 만들어서 양식도 만들었었다. 엑셀의 좌측에 ① 나는 ooo를 달성하기 위하여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식으로 질문을 몇 개 넣고, 매일 그 질문에 답해가는 식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나는 이걸 하는 걸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나의 삶이 양식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만약 지속했더라면 나는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 일을 할 때는 그렇게 하기 때문이고, 그게 일에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나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일단위 관리 계획부터 잡는다. 그러니 효과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삶을 그렇게 양식 안에 채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세월은 흘러 왔다. 그리고 흘러가고 있다. 다시 말한다 해도 세월의 흐름이 나는 싫지 않다. 세월이 감에 따라 사랑하는 부모님들께서 연세를 들어가시고, 돌아가시고 할 것이다. 내가 늙어가고 언젠간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별만을 생각하고 오늘을 살기엔 삶이 그렇게 가볍지 않다. 나는 앞으로의 삶을 밝고, 약간 무겁게 살아가려 한다. 무거움이 삶을 짓 누를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약간의 무거움은 안정을 준다. 조급하지 않게 한다. 할 일들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망설임 없이 밀어가고, 싫어하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면 즐겁게 해 갈 것이다. 아내의 말대로 눈 빛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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