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꼰대가 되어 있었다. 이런... 50대 나이 많은 꼰대.
어떤 세대든 할 이야기들은 많다. 입시제도 하나 변해도 그 세대는 왜 하필이면 우리일 때 제도가 변할까? 우리 세대는 왜 이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전쟁을 겪었던 세대도 있다. 내일의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을 겪어 오신 분들이다. 그 어려움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그 어려움에 매여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 글을 역사의식이나 시대로 엮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저 꼰대라고 특정지 어진 50대인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내 걸어온 길은 좁다. 좁은 길을 엮어 가다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이 조금은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우리 50대 꼰대(?)들의 모습도 보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미래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우리 세대의 평균도 아니고, 표준이 될 수도 없다.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도 벅차다. 그렇더라도 난 나의 미래를 어둡게 그려가고 싶지 않다. 밝고 강하고 절실하게 그려가기 위해서 난 이 글을 써본다.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 미래가 현재가 되어감도 그려 가려한다. 평범하지만 아주 평범하지 만은 않은 모습을 그려 가려한다. 작가의 경지는 아니나 글을 쓰고 읽기 좋아하는 50대로서 나를 기록해서 마음에 새기고, 나를 게으름에 가두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혹은 누군가는 나에게서 같은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밝고 행복함이 있다고 하면, 그걸 꽉 움켜쥐고, 만약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그 어려움이 혼자만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란 걸 위안삼아 준다면 그것도 보람이다.
나는 멕시코에서 11년을 주재원으로 있었다. 그리곤 본사로 복귀를 하였다. 복귀를 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보니 나는 어느새 '나이 많은' 50대가 되어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내가 나이 많은 50대라는 걸 느끼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나는 나이 많은 50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냥 50대였으면 좋았을 것을.. 꼰대(?)까지 되어 있었다. 나 역시 어려서 꼰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생 때 인지 아마도 그즈음에 고집 센 선생님을 그렇게 지칭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니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꼰대가 되어 있었다. 이런... 50대 나이 많은 꼰대. 그게 내가 11년 만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얻은 나의 위치였다. 멕시코에서 나의 멕시칸 친구들의 주 연령대는 30대 후반 ~ 70대 초반이다. 범위가 넓긴 하지만 모두가 Amigo (친구, 스페인어)다. 모두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쓴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하니 존댓말이 있긴 하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내가 50대이니 어떻게 보면 친구들 세대를 보면 중간이었다. 게다가 아시아계 사람들은 멕시코나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엄청 동안(?)이다. 우리 나이를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50대는 거의 40대로 본다. 너무 많이 봤나?
더군다나 세대를 이렇게나 치열하고 극명하게 구분하는 것도 놀라웠다. 심지어는 세대 구분에 별 관심도 없는 다른 나라의 세대를 구분해 주기도 하는 걸 보면서도 놀랐다. 우리나라는 정말 훌륭한 나라이다. 어느 선진국에 비해도 탁월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와 자식에 대한 교육열, 세대 구분을 통한 시장분석 등등이 어우러져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게 되었다. 자랑스럽다. 반면에 우리는 세대를 치열하게 구분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00대의 세대 탓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0세 차이로 세대를 구분하신 공자님의 뜻도 이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10년 내에 극소수를 제외한 많은 50대가 조직의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나는 50대의 대기업 직원이다. 이제 나와 같은 50대 직원들은 현재도 많이 조직을 떠나 있을 것이지만, 10년 내에 극소수를 제외한 많은 50대가 조직의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현재 50대의 인구를 고려한다면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조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가정을 하나 해야 한다. 가설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설은 현재 50대의 자식 세대인 20~30대의 고용이 완전고용에 가깝다는 전제를 세워야겠다. 나는 여기서 현재 50대가 가진 능력을 이야기할 것이고, 특징을 이야기할 것이고,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에는 나의 자식 - 4명의 20대인 아이들이 있다. -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본 의식이 깔려 있다. 지금 당장으로 보면 20~30대의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언제 쓰일지 모르고, 어떤 스펙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은 자격증, 한 줄이라도 채워줄 이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난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절실하게 바란다.
나는 50대의 인생이 은퇴를 준비해야 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연금 계산하고, 이제 다른 사람들은 생각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들 결혼시키고 손주 자랑할 생각하고, 내일은 어떤 산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경쟁은 이제 진저리 난다고 제쳐두고 마치 세상 다 산 것처럼 그런 건 싫다. 다들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작금의 50대들이 이런 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쉽지 않다. 놀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일하는데 길들여져 있는 세대다. 이를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굳이 바꿀 이유도 없다. 놀 줄도 모른다. 놀고 싶지도 않고, 놀지도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