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편
첫째 밤톨이가 아직 많이 아기일때는 우리도 초보 부모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 심하던 시기여서 외출, 특히나 아기와 함께하는 외출은 더더욱 엄두가 안나던 시기였다.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예민한 아기였던 밤톨이 덕분에 정말 마라맛 육아를 온몸으로 때려맞던 우리였다.
'에이 처음 아기 키우다보면 다들 힘들지 뭐- 엄살은' 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근데 정말 생색내는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우리 밤톨이는 진짜로 쉽지 않은 아가였다.
주변 그 어떤 육아 케이스를 들어보고 읽어봐도 밤톨이만큼 힘든 케이스는 찾기 힘들정도로 키우기 가장 어려운 모든 사례를 모아둔 종합선물세트같은 육아 난이도의 아가였다.
코로나19 시기.
육아 도우미는 커녕 양가 부모님도 오시기 쉽지 않은 상황에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문센은 죄다 문을 닫았었고, 그나마 문을 열었던 키카는 갈만하면 확진자 방문 소식이 들려 가기가 꺼려졌었다.
날이 좋아서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싶으면 동네 오지랖 넘치는 할머니들이 우루루 달려들어서 애 마스크도 제대로 안씌우고 어딜 나돌아다니냐고 꾸짖으셨다.
밤톨이의 유모차/카시트 거부.
우리 부부가 밤톨이를 기르면서 육아 관련 글을 읽을때 마다 서로에게 되물었던 질문이 있었다.
"아기가 유모차에서 잔다고?? 그게 가능해???!"
이게 무슨말인가 싶겠지만, 그때 당시 우리는 진심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몰랐다.
밤톨이는 감각이 정말 예민한 아기였고, 동시에 굉장히 활동적인 아기였다.
저러다 팔이 빠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파닥거리고, 그저 누워서 파닥거리는 것 뿐인데 깔려있는 이불이 밀려 움직일 정도로 격하게 움직이며 놀았다.
그러다보니 유모차나 카시트처럼 본인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제한하는 환경에 처하면 진짜로 경기를 일으키며 울었다.
좀 울다가 잠들지 않냐고?
3시간을 내리 울음강도 max.로 울어재끼는 아가를 본적이 있는가?
생후 몇달 안된 아가가 울다울다 목이 쉬는걸 본적이 있는가?
그러면 안아서 재우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 싶이 밤톨이는 감각이 정말 예민한 아가였다.
안겨있으면 안정감에 잠이 들긴 하는데 잠자는 침대가 아니다보니 안겨서도 30분 이상을 잔적이 없다.
안아서 재우고 유모차에 눕히면 잔다고?
눕히려고 몸을 사알짝 기울이는 순간 눈을 번쩍! 부릅뜨며 다시금 울음 max 모드로 들어갔었다.
등센서도 아니고 자이로센서가 장착된 아가는 밤톨이 외에 들어본적이 없다.
밤톨이는 굉장히 장이 민감하고 약한 아가였다.
(누굴 탓하랴. 내가 장이 예민하다ㅠ)
모유 수유를 해도 배앓이가 심하고 배탈이 계속 나는 통에, 분유며 유산균이며 별의 별 수를 다 시도해봤으나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민감 장에 좋다는 값비싼 분유를 처음 시도해봤을 때(그전 분유에 소량 혼합),
밤톨이가 문자 그대로 발작을 일으키며 울어서 그 새벽에 주변 소아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헤맸던 순간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결론은 그냥 분유가 안맞아서 배가 아팠던 거였다;;)
한번 걸린 장염이 낫지를 않아 자다가도 물설사를 하는 바람에 축 처진 아기를 부여안고 벌벌 떨었던 날도 많았다.(새벽에 침대이불 통째로 세탁은 덤. 다시금 말하지만 그때 우리집에는 건조기가 없었다...)
기억에 남는 어려움만 이정도.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아기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지금 이순간이 나중엔 너무 그리워진다'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전혀 와닿지 않았다.
정말 죽도록 힘든 이 시간이 그리워질리 없고, 밤톨이가 빨리 크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Never say Never이랬던가.
둘째 라라를 키우면서 정말 많은 순간 첫째 밤톨이가 떠오른다.
비교한다는 느낌이 아니다.
"오빠는 이랬는데 넌 왜이래" 와는 전혀 다른 그저 막연하게
'아 밤톨이 때는 이랬지, 라라도 똑같네(혹은 라라는 다르네)' 라는 생각이 시시각각 떠오른다.
라라가 처음으로 손을 빨려고 시도했을 때였다.
손가락도 제대로 못움직이고 손을 움직이는것도 어색해서 주먹째로 입에 우겨넣고 옴뇸뇸하는 모습이,
딱 밤톨이때 모습과 똑같았다.
"오구 우리 라라, 오빠랑 똑같네?"
하고선 밤톨이가 주먹을 입에 우겨넣는 사진을 찾아보니 복사-붙여넣기가 따로없다.
그러고선 신기하게도, 라라의 사진을 들여다보는게 아니라 아가 밤톨이의 사진에서 눈이 떠나질 않는다.
이목구비도 덜 또렷하고, 올록볼록 미쉐린 팔뚝에, 눈도 지금만큼 또렷하지 않은,
지금 저렇게 커서는 아빠보다 더 잘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보다,
엄마 품에 폭 안겨있는 꼬물이 시절 그 몰랑몰랑한 밤톨이가,
정말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립다.
무엇이 그립냐 고 물어보면 콕 집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시절의 조금이나마 젊었던 우리가 그리운건지,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아련함인건지,
초보 엄빠였기에 알아주지 못해서, 더 신경써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인건지,
정말 모르겠다.
분명 지금부터 5년 후 지금의 아이들 사진을 보면 아마도 비슷한 그리움이 몰려올 것이다.
야근하고 들어와 간신히 자기 전 아가들에게 입맞추고,
품에 번쩍 들어올려 안아 침대에 눕혀주며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면,
까불까불 거리며 티히히 웃는 밤톨이가.
아직 말도 못하고 기어다니지도 못하면서 아빠만 보면 해맑게 온 얼굴로 웃어주며 파닥이는 라라가.
밥먹을 틈도 없이 자리에서 대충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간신히 일을 마무리하고 달려온 피로감이.
밤톨이와 라라 둘다 겨우 재우고 어두컴컴한 집에서 랩탑을 꺼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분명 또다시 사무치게, 가슴 아리게, 간절하게 그리울거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써준다면 뭐라 써있을까.
왠지 지금은 그 내용이 무엇일지 선명하게 알것 같다.
힘들지. 고생했어. 고생이 많아. 그 시간에 있는 네가(내가) 너무너무 부럽다.
우리 사랑하는 아가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의 사랑스러운 아가들 꼭 좀 많이 안아줘.
사랑한다고 한번더 말해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