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 ADHD다.

그리고 그걸 스물셋에 알았다.

by 백일



내 ADHD 첫 교집합의 시작은 어느 작가의 일상툰이었다. 우울증과 주의력 결핍장애(성인 ADHD)를 동시에 앓고 있다는 내용의 일상툰이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많은 공감을 샀던 그 일상툰은 바쁜 삶 속에서 어느새 잊혀져 갔고, 나는 가볍게 나돈가? 하고는 내가 의사도 아니고... 하는 마음에 지나치고 말았다.


그 후. 정신과 의사들이 만든 설문자료를 봤었다. 정확히 어디에서 주최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만 정식 설문지였고, 나는 거기서 ADHD 검사를 우연히 하게 되었다.(내 첫 교집합인 어느 작가의 일상툰에서의 공감으로부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나는 늘 불안을 달고 살았다. 잘하고 싶어서? 최악까지 생각하느라? 이번 경우에는 후자였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병원에서 얘기를 안 꺼내는데 뭐하러. 뭐하러 말을 꺼내. 괜히 더 예민한 '환자' 취급이나 하겠지. 인터넷 좀 그만보라며 의사가 괜히 의사가 아니라 하겠지. 그건 내 실수였다.


병원을 옮겼다. 새로 옮긴 병원은 대기시간 빼고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담당 원장님은 내 말을 끊지 않으며 공감해주고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적절한 질문으로 마음을 이끌어내고 잘 들어주며 모든 것을 타이핑했다. 눈의 접촉도 잊지 않았다. 감정의 공유라는 것을 아는 의사였다.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러다 내 증상을 듣더니 충동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어릴 적에 관한 이야기를 묻더니 ADHD에 관한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소견이 나왔다. 나는 직감했다.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온 것 같다고.


주의력 검사를 받으러 갔다. 주의력 검사는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긴장이 되었다.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은 늘 도전이 되지만, 내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장애를 안고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 (그것도 거의 확신하는 상태에서) 검사하러 가는 것은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검사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과가 나왔다. 나는 성인 ADHD가 맞다. 심지어 아동 때부터 ADHD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태연한 척 했지만 다른 가족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조곤조곤 말하려고 노력하며 설명하고 잘 받아들이는 척 했지만 누구보다 부정하고 싶은 것은 나였다. 판정을 받은 순간부터 그동안의 모든 것이 ADHD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괴로웠다. 괴로움에 눈물이 터져나와 숨을 헐떡이며 공황약을 꺼내먹어야 했다.


안 그래도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 나였다. 불안성 우울장애. 공황장애. 이것들만 해도 버거워 미칠 지경이었는데. 내 정신과적 장애들이 모두 남탓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며 회피해온 나인데. 지금껏 살아온 나 그 자체가 문제라니. 그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스물셋이나 되서야. 인생이 농락당한 기분이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가 이상한 건지. 누구는 내게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경멸의 눈빛으로 느껴지는 시선이 나를 주눅들고 죽고 싶어지게 만드는 걸 그 사람은 알까. 절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아니니까. 그 무심한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그는 모른다. 그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가족구성원에겐 표현에 재능이 없다. 거기에 노력조차 않는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뿐인데, 너무 과한 표현들이 잘못된 방식인 걸까. 괴롭다.


삶이 버겁다. 세상은 어른이 되길 강요했고, 어른의 책임을 마땅히 져야한다고 비난하지만 내 속에는 그저 스스로 돌아봐주고 돌봐주지 못해 잔뜩 다치고 헤매다 길을 잃고만 어린아이 뿐이다. 몸뚱이만 스물셋이면 뭘 어쩌겠는가. 마음이 자라지 못해 시간이 흐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데. 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자라지 못한 걸까. 돌아보기가 겁이 난다.


세상이 그저 조금만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고 각박하다. 요즘 세상은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분쟁하기를 좋아한다. 평화에는 다들 관심이 없는 걸까. 어떤 이들은 심지어 평화를 명목으로 언쟁을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정신적 장애가 있어도 좀 더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사실은 내가 내게 언젠가 그래주고 싶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좀 더 관대해지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존중하면서. "그럴 수 있어."하고.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늘 행복할 순 없다는 것을 압니다.

죽고싶은 마음이 들 땐 어쩔 수 없단 것도 잘 압니다.

누구보다 아니 그 마음이 드는 당신처럼 잘 알아요.

저도 죽음을 수없이 생각했고 오늘도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사실 죽고싶은 것이 아닙니다.

딱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싶은 거예요.

그러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거든요.

인생에는 지옥같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껴질 땐 생각해보세요.

반드시 인생엔 행복한 순간들도 찾아온다는 것을요.

어쩌면 당신이 바라는 평범한 행복을 찾을 거라고.

힘들 땐 그런 생각을 반사적으로 떠올려보세요.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나는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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