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친구가 편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 내가 허물없이 마음을 털어놓아도,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도 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밥이나 술을 얻어먹어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얻어먹는 것은 다음번 내가 사기 위한 과정일 뿐 단순히 공짜로 얻어먹기 위한 꼼수는 아닌 것이지요. 그냥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것이지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누군가에게 무엇을 얻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땐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 앞에서 나는 절대 당당해질 수가 없지요. 그 사람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 왠지 목소리도 작아지는 것 같고 행여 그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전전긍긍 합니다. 그것이 돈이 됐든 권력이 됐든 한 끼 밥이 됐든 내게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편안할 리 없습니다.
권력자들을 만났을 때도 왠지 주눅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권력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 주눅이 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권력은 권력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힘을 더하는 법이니까요.
사람과의 사이에서 바라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더 이상 욕심 없이 단 한번만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본업에 충실 한다면 처음 정치에 입문하던 순수한 소신대로 끝까지 행할 수 있을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정치인들이 또 한 번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유권자들에게 당당할 수 없고 우리는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오히려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선거에 승리하는 순간 우리가 유권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위에 군림하려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는 바둑명인 조치훈이 했던 ‘승리는 우연이고 패배는 필연’이라는 말을 몸으로 입증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그가 가진 부수적인 것들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를 눈여겨보며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땐 권력이나 부나 명예는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이 되고 주된 목적이 ‘사람’ 그 자체가 될 테니까요. 내가 당신에게서 바라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그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지요. 돈은 그 사람 것이고, 그 돈은 내 돈이 아니고, 그 사람이 그 돈을 내게 그냥 줄 일도 없고, 그러니 우리는 오로지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따져 함께 시간을 보내면 그만입니다. 만일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 좋으면 마음을 나누고 함께 지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낼 일 없으니 굳이 주눅이 들 필요도 없지요.
우리가 함께할 때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귀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군가와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행복한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