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10. 2022

284. 기억과 망각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사람인가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이냐며 반문하겠지요? 십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질문하는 것조차 우습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물리적으로 계속 변화하고 생성하면서 새로워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수준에서 볼 때 인간의 간은 6주, 피부는 1개월, 위벽은 5일마다 새롭게 생성됩니다. 뼈도 끊임없이 파괴되고 파괴된 부분을 새롭게 교체하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1년이면 모두 새로운 뼈로 교체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처음 했던 질문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억’입니다. 1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그때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이 사라진다면 과거의 나는 전혀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심리학자 밀러는 단기기억의 용량을 개인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평균 7개 정도라고 말합니다. 그 외에 나머지 기억들은 모두 하나로 묶어 기억한다는 거지요. 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되고 그 많은 것들을 모두 기억해서 지금의 나와 연관시키는 것은 역부족입니다. 뇌의 용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도 훈련 여부에 따라 용량이 늘어나기도 한다지만 아무리 용량이 크다고 해도 모든 것을 저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깊게 뿌리박힌 기억들은 저장도 오래가지만 그렇지 못한 기억들은 얕은 기억으로 머물다가 빨리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노인은 깊이 각인된 것들만을 단편적으로 기억해내고 그 외의 통합해서 기억한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치매가 아니라고 해도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 우리는 많은 기억들을 잊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만일 힘들고 아픈 기억이 있다면 바쁜 일상생활을 통해 예전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삶에 몰두할 수 있는 전환점을 빨리 마련할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뇌가 더 이상 많은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우리의 기억도 점점 더 단기간으로 변했을지 모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습관으로 기억된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점입니다. 예를 들면 운전하는 습관이라든가, 운동하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요. 그것은 절차가 반복되면서 뇌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어도 운전을 하던 사람은 다시 배우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있고, 수영하던 사람은 환경만 주어지면 다시 수영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신비해서 기억하려 할수록 더 많은 기억을 할 수 있고, 잊으려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이 기억과 망각의 연속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잊고 살아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이전 02화 285. 맛을 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