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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97. 농부의 마음

씨앗을 뿌리고, 돌보고, 쌀을 수확하기까지 봄부터 가을까지 농부의 시간은 더디게 흐릅니다. 거센 비바람도 지나야 하고, 한여름 강렬한 태양도 지나야 하고, 작물을 해치는 벌레나 새들과도 싸워야 하고, 좋은 양분도 많이 주어야 합니다. 

혹여 가뭄이라도 들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논바닥을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우다가 벼들이 마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농부의 속이 타들어갑니다. 하늘을 원망하다가 어느 날 소나기라도 오면 마치 자신이 갈증을 해소하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겠지요. 알곡을 쪼아 먹는 새들을 쫓기 위해 논 한가운데 깡통을 매단 허수아비도 세워둡니다. 그때의 허수아비는 예쁘라고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벼가 잘 자라길 바라는 농부의 애틋한 마음입니다. 

잘 익은 벼들이 상품으로 만들어 고객의 밥상에까지 오르기까지는 이러한 농부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농부에게 논에서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인 벼들은 그저 ‘대견함’과 ‘뿌듯함’일 것입니다. 거센 비바람과 한여름 태양을 잘 견뎌주어서, 해충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어서 그저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 그때 비로소 농부가 거쳐 왔던 땀과 수고는 모두 보람으로 바뀌겠지요.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가을날 누렇게 익은 벼들을 본다면 감탄부터 나올 것입니다. 그때 누런 벼들은 한적하고 여유가 있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 앞에 예쁜 허수아비라도 있다면 그것을 배경삼아 사진도 찍고 싶어질 것입니다. 생명을 기르지 않는 그저 관람자의 눈에 그 벼들은 대견함이나 뿌듯함이 아니라 풍경의 일부, 소비의 대상에 불과하니 돈으로 교환하면 그뿐입니다. 

사람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도 농부의 마음과 다를 바 없지요. 비바람 막아주고, 병이 들까, 행여 지칠까 노심초사하고, 그러다보면 그것이 예쁘다고 느낄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매일 보살펴야 하고,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걱정해야 하는 일련의 일들이 쌓여있기 때문에 예쁨이나 아름다움을 느낄 마음의 여유는 없지요. 

그러다 어느 날 자식이 장성하여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잘 견뎌줘서 대견하다고, 그러면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이 보람으로 바뀔 것입니다. 손자 손녀가 예쁜 것은 책임으로부터 조금 멀어질 수 있고 관람자나 관찰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식보다 손자가 더 예쁠 수밖에요. 

올 봄에는 마당에 처음으로 색색의 예쁜 수국을 심었습니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지내는 과정이 이제 3개월여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물을 주지 못했는데 수국보다 내 마음이 더 바짝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행여 영양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될까 매일 옆에서 자라는 풀들을 뽑아주고, 뜨거운 태양에 목이 마르지 않을까 저녁이 되면 물을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자라 이제는 너무 예쁜 꽃들이 크고 탐스럽게 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꽃들을 여유롭게 감상하지 못합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도 꽃들 옆에 피어 영양을 나눠 갖는 풀을 뽑아주어야 하고 물이 부족하지 않은지 돌아보는 농부의 마음이 이미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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