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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99. 가꾸는 즐거움

얼마 전 아파트에서 벗어나 한적한 주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사람의 왕래가 뜸해서인지 이른 아침이면 새 소리가 잠을 깨우고 텃밭을 가꾸며 나누는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 정겹게 들리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새벽 5시가 되면 운동복을 갖춰 입고 헬스장에 나가 운동을 하고 바쁘게 돌아와 텔레비전 뉴스를 들으면서 출근준비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커피를 뽑으러 갈 때나 혹은 화장실을 가는 때,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 때를 제외하면 밤 열두시가 되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아 어깨가 굽어가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퇴근 후 집에서는 씻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택으로 이사한 후에는 손이 가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방 내부만 청소했던 예전과 달리 방안과 집 주변 청소도 해야 하고, 심어놓은 나무나 꽃들도 가꾸어야 합니다. 어제는 주방 바로 옆에 긴 목재로 3개의 구획을 정하고 5평 정도의 땅에 다양한 채소 모종을 심었습니다.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자주 먹는 상추와 고추를 심었고, 그 옆 칸에는 토마토와 가지를, 마지막 칸에는 오이와 호박, 대파를 심고 씨앗으로 열무와 아욱을 정성스럽게 심은 후 물을 흠뻑 주고 잘 자라길 기도했습니다. 

심을 때만 해도 시들시들 했던 모종은 이튿날 아침이 되니 제법 싱싱하게 허리를 곧추세웠습니다. 이제 이 텃밭에서 햇볕을 듬뿍 맞고 건강하게 자란 채소들은 매일 밥상 위에 올라와 건강을 지켜주는 든든한 식재료가 되겠지요. 주방 창문을 열고 채소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건강해진 느낌이 듭니다. 

일과도 바뀌었습니다. 아침에는 운동 대신 마당에 나가 잡초를 뽑습니다. 한 시간 넘게 잡초를 뽑은 후 집안에 들어오면 뉴스 대신 음악이 듣고 싶어집니다. 뉴스를 안 들으면 할 일을 안 한 것처럼 조급해지던 마음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귓속을 파고드는 음악 소리에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 있는 아침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예전의 조급하고 번잡하고 바쁜 아침풍경 대신 얻은 잠깐의 여유와 호사입니다. 

오늘 아침엔 마당에 심어 놓은 수국과 장미 중에서 예쁘게 핀 몇 송이를 잘라 작은 화병에 꽂았습니다. 활짝 핀 꽃은 자르기가 미안해서 잠시 머뭇거렸고 너무 작은 봉오리는 차마 자르지 못해 ‘잘 자라라’ 하며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올해는 작은 송이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내년이 되면 훌쩍 큰 모습으로 대면하게 되겠지요.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고 했던가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나이 오십이 넘어 변화된 주거환경은 나의 생활리듬과 생활패턴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 버린 것만 같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해도 도무지 집 생각이 나지 않았던 예전에 비하면 이제는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집은 삶을 휴식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말에 꼭 맞게 생활리듬이 바뀌는 것이 긍정적인 사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내 손길과 노력으로 집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가꾸어가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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