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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21. 함께 살아가는 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이제 막 연초록 물결을 이루고 있는 논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백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나 저수지, 호숫가에서 눈을 마주치다 문득 후드득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백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것도 백로가 지닌 우아함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우아한 백로가 청주에 있는 한 학교에서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우아한 백로가 골칫덩어리라니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뉴스를 보다보니 그런 표현도 이해가 되더군요.           

청주 남중학교 뒷산에 둥지를 튼 1000여 마리의 백로 떼, 새들의 깃털이나 분뇨, 거기에 소음까지 뒤덮여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사장 바로 뒤편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새끼들로 썩은 내가 진동한다고 하니 학교는 물론이고 환경단체들까지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아마도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떼를 보면 돗자리 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지지만 정작 초원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양떼가 싸 놓은 배설물로 인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는 것과 같은 맥락일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겠구나 짐작했습니다. 아마 새들이 살고 있는 뒷산 나무들을 벌목해 새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겠지요. 그러나 만일 서식지 벌목을 하게 된다면 날지 못하는 새끼들은 추락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새끼를 찾는 어미 새들이 찾아와 오히려 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될 것은 불 보듯 한 일일 겁니다. 실제로도 청주에 있는 한 공원에서는 수백 마리 백로 떼가 그렇게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들은 새들을 쫓아내는 대신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다움을 그곳에서 발견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에서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동물인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죽이거나 쫓아내는 것이 현실이고 일반적이었으니까요.           

학교에서는 백로 떼가 가능한 학교와 가까운 숲에 날아오지 않도록 최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백로들이 계속 그 숲에서 살 수 있도록 했고 그러기 위해 학교와 뒷산 사이에 차단막을 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환경단체와 교육단체 등 관련 단체들은 머리를 맞대고 백로서식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네요.           

그 학교의 학부모들은 “나도 자식 키우는 부모인데 아무리 새라고 해도 새끼를 해칠 수는 없다”며 백로 떼와 상생하는 방안을 적극 찬성했다니 학부모와 교사, 지역주민 모두가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상생교육, 생명교육을 제대로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과 사람, 동물이 서로를 보듬고 함께 살아가는 일, 그것도 결국은 사람의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이번 일을 통해 또 한 번 가슴 뜨겁게 배운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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