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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61. 사모곡

“어버이 살아 신 제 섬기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요즘 이 시조가 자꾸 생각납니다. 살아계실 때는 못하고 돌아가신 후에 후회 하는 것은 세상 모든 자식들의 공통점일 테지요. 돈 벌면 효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 그 말이 얼마나 허무한 말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마음을 다 전하기도 전에 부모는 또 곁을 떠나시겠지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일찍 결혼을 했으니 나를 길러주고 지켜준 건 친정어머니가 20년, 시어머니가 20년, 나는 그렇게 불혹의 나이를 맞았습니다. 이제 내가 그분들을 지켜드려야 할 때가 되었는데 이미 한 분은 내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친정부모와 시부모까지 네 명의 노인을 차에 태우고 전국일주 가겠다던 내 야무진 꿈도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모두 헛된 말인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는데도 가슴 속 슬픔이나 그리움은 처음 그때처럼 날것입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사돈이 된 이후에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셨기 때문에 명절날 친정 갈 때도 나는 언제나 시어머니와 함께였습니다. 맛있는 게 있으면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던 건 두 분이 같았지만 좋은 것이 생기면 몰래 감춰뒀다가 내게 건네주시는 건 언제나 시어머니였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나를 가르치기 위해 야단을 많이 치셨지만 그런 나를 감싸주는 건 언제나 시어머니였습니다.


시어머니 앞에만 서면 아무도 나를 건드릴 자가 없었습니다. 그 앞에서는 아무도 나를 욕할 수 없었고 나를 해코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모든 바람을 막아주셨고 그 안에서 나는 평온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남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착한 며느리로 비춰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잘못을 감싸주시던 시어머니 덕분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보지도 못했고, 맛있는 것도 혼자 먹을 때가 많았고, 생각하는 날보다 잊고 지낸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엄마 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엄마가 담가준 김치 오래 먹지”하고 투정부리면 시어머니는 “지랄허네. 오래 살아 뭐 허냐. 내일이라도 부처님이 부르시면 자는 듯기 가야제”하면서도 내 투정이 싫지 않은지 웃곤 하셨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절절 매고 있을 때 매번 대학 등록금에 대학원 등록금까지 대주신 것도 시어머니였고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 한 것은 나를 공부시킨 일이라며 흐뭇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뭐라 하실지, 문득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평소 말씀하신대로 자는 듯이 돌아가신 어머니, 그 따뜻했던 이름을 가만히 부르다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버이날인 오늘, 친정 부모님께 꽃을 달아드리려니 그 옆자리에 앉아 환하게 웃던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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