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머금어지는, 가까이에서 보기만 해도 절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젊음’입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젊은 두 남녀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의 모든 빛들이 온통 그들을 향해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어떤 어려움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젊음’은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단어입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은 암울한 시대에 살면서도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실 때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라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젊음이라는 큰 밑천이 있었기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정말 쩨쩨하게 굴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몇몇 어른들은 그런 젊음의 호기를 ‘객기’라는 말로 폄훼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우정이나 사랑을 위해 종종 아끼던 물건들이 술집이나 전당포에 맡겨졌지만 친구의 어려움은 곧 나의 어려움이었고 친구의 부모님은 곧 내 부모님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내 것을 버려 친구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요.
소주에 새우깡을 먹으면서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이제 중년이 된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취업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취업 때문에 자살까지 했다는 청년들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은 마땅히 거쳐야 할 인생의 순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알던 젊음의 의미는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객기를 부리지 않고 객기보다는 ‘분노’가 더 많은 날들을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비전을 주지 않으면서 오로지 더 많은 능력을 키우라고 주문합니다. 인성이나 능력보다 자격증이 더 대우받는 시대에서 젊은이들은 자격증에 목숨을 걸고 오늘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포기한 채 이론서에 몰두합니다.
대학 졸업을 연기하면서까지 취업을 위한 자격증에 매달리는 젊은이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번번이 실패하는 취업,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며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패기를 잃고 점점 위축돼 갑니다. 그러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결혼은 이미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요.
서른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석사·박사 공부를 해도 여전히 비정규직이나 실직자로 머무는 세상에서 젊음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펄펄 끓는 젊음을 억누르고 취업에 몰두하느라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마저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암울한 현실에서 젊은 층의 자살률은 해가 갈수록 점점 늘어갑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한숨이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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