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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98. 묻지마세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 말에 대한 공감이 선행돼야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그 사람과 마음으로 교류하고 싶다면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 역시 경청과 공감입니다. 만일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건 내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해도 좋을 겁니다.     


그러나 경청과 공감이 필요하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이 드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용돈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면 백번이면 백번 모두 “집에만 있는 늙은이가 쓸데가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또 여전히 “먹고 싶은 거 아무것도 없다. 집에서 밥 먹는 게 제일”이라고 하십니다. 예쁜 옷을 보고 “사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부모님은 “다 늙은 사람이 무슨 옷이 필요하냐. 집에도 옷이 많다”고 하십니다.     


어릴 때는 생선 대가리가 맛있다는 엄마를 위해 생선 대가리만 그 앞에 놓아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주 어릴 때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철이 없었구나 싶은데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거나 아니면 최소한 믿는 척하며 모르는 척 하기도 했으니 철이 없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도 돈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하고, 예쁜 옷을 보면 사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옷이 있다면 부모님께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만 결정해도 좋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깨닫게 됩니다. 자식의 형편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님께 물으면 대답은 들으나 마나 같을 테니까요. 처음에는 필요 없는데 왜 사왔느냐고 타박을 하시지만 몇날 며칠 동네방네 다니며 자식이 사온 것이라고 자랑을 하는 것이 부모님의 진짜 속마음이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니 연로한 부모님이 자식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오히려 본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점점 아픈 곳이 많다거나 어딘가에 서운함을 느낀다는 뜻이니 그럴 때는 어디가 아프신지 여쭤보고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서운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드려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자식들은 언제나 부모님을 찾아가면 자신의 힘든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돌아오는데 부모는 자식이 돌아간 뒤에도 내내 자식걱정에 온밤을 뜬눈으로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으로 돌아온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부모님의 일상에 대해 묻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식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늙으니 외롭다는 말,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니 마음이 헛헛해진다는 말, 아픈 곳이 많아져 서글프다는 말, 노인정에 자식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지 않는 내 자식들이 더 그리워지더라는 부모님의 말을 들어본 자식들은 몇이나 될까요. 나도 오늘은 부모님을 떠올리며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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