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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62. 구경꾼과 당사자

옛말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합니다. 살다보니 싸움도 구경하게 되고 불 난 것도 구경하게 되지만 아무리 해도 그게 재미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싸움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사람이 다칠까 뜯어말려야 하고, 불이 났다면 피해 입은 사람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니까요.


나와 상관없는 일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슬퍼지는 것은 우리 모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고, 깊이 들어가 보면 사회적인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그 어떤 일도 나와 연관 없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타인의 불행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할 수 없고 그 사람의 불행에 대해 공공의 책임 역시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대라면 우리는 언제나 의도치 않은 이유로 인해 하루아침에 얼마든지 구경꾼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얼마 전부터 옥시제품을 사용하던 사람이 죽거나 병들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벌써 수년 전에 제기된 그 의혹에 대해 당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제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불매운동을 벌이며 사건이 파헤쳐지니 그나마 다행이구나 싶습니다.


옥시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릴 때 옥시 제품 중 ‘가습기 메이트’가 처음 출시됐습니다. TV광고에서는 아이에게도 안전하고 살균과 가습을 동시에 하는 제품이라며 선전했고 새내기 주부인 나는 그 말에 혹해 계속 그 제품을 사다가 아이 방에 틀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의 기침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천식이라는 진단을 받아 초등학교 때까지 힘들게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얼마 후 가습기가 고장 나면서 젖은 수건을 널어놓으며 더 이상 가습기 메이트를 쓰지 않았으니 어쩌면 하늘이 도와주신 우연한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경꾼에서 당사자로 생각이 전환되자 이번 사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다고 했던 순수한 보살핌의 행위가 내 손으로 가족을 죽게 만든 상황이 되어버린 당사자들은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구경꾼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내 삶의 전부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한 기업의 무책임이 부른 비극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게 만들었다는 평생의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무고하고 순한 목숨들을 앗아갔고, 다행히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 병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만들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피해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비극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자본주의가 부른 비극이 이 땅의 순한 생명들을 해치지 않기를, 우리 모두 구경꾼에서 당사자의 마음으로 분노하고 함께 맞서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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