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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60. 손목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한 자식이/ 저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쫓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 붙여보세나 동무들아/ 고대로 못 붙여 보내면/ 고이 싸서 동무들 편에 들려 보내야지/ 들고 가서 이렇게 못쓰게 되었으니/ 묻어버려야 쓰겠다고/ 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윤제림 詩 「손목」 전문


평택도 점점 다문화사회가 되어갑니다. 시내 어딜 가도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농사짓는 곳이나 공장 같은 곳에 가면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일하는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이 시가 생각나곤 합니다.


예전에는 장갑 한 짝만 잃어버려도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 찾아올 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며 혼이 나곤 했습니다.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절,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의 이야기지요. 시인은 시를 통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힘들게 살던 우리의 옛 시절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현재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현 시점에서 예전 우리처럼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스리랑카 노동자는 손을 잃고 겁에 질린 눈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장갑 한 짝 잃어버려도 집에서 난리가 났는데 예전 우리처럼 어려운 나라에서 온 이 노동자는 장갑도 아니고 손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집에 돌아갈까 걱정하는 시인의 마음은 단순히 그를 동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나라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나야 했던 힘든 과거를 잊게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을 무시하며 이들이 일을 하다 손을 잘려도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사회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시인은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되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피부색이 달라도, 사는 곳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 나가 일 할 때 매일 아침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내 어머니의 기도처럼 그들의 고향에서도 매일 아침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가족들이 있겠지요. 그걸 기억한다면 외국인노동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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