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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71. 말 못할 고민 '생리대'

가난은 어느 세대에나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친구들이 사 먹는 쫄면이나 떡볶이를 사먹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고 매번 친척이나 이웃이 버린 옷들을 얻어서 고치거나 줄여 입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가난한 친구에 속했습니다.


엄마는 항상 서울 친척 집에 가서 언니들이 입던 옷을 얻어 자루에 가득 담아 막차 직행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엄마가 터미널에서부터 힘들게 머리에 이고 온 자루를 동생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들어 꺼내 입고는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벌이곤 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엄마는 항상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셨습니다.


얻어 입는 옷은 항상 너무 크거나 작아서 바쁜 엄마를 대신해 틈이 날 때마다 조막손으로 바늘에 실을 꿰서 바짓단을 줄였고 어떨 때는 너무 작은 옷들을 욕심내서 입고 학교에 갔다가 친구들이 보는데서 엉덩이 솔기가 터져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새 옷을 사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건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우리 집 형편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 느껴지는 가난의 체감도는 훨씬 더 커졌습니다.


인천공항이 생긴 이래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등의 뉴스가 난무하며 생활수준이 높아졌음을 자랑하지만 다른 한켠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으로 대신하거나 아예 그날이 되면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만 머문다는 사실은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몰랐다기 보다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비교적 어렵게 살았던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차마 얼굴을 들기도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사회적으로 복지가 강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인권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국회에 계시는 한 남성분은 생리대라는 단어조차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했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 지도층의 인식 또한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한 달에 한 번씩 누구나 하게 되는 생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니 생리에 수반되는 생리대 역시 인권의 차원에서 당연히 제공돼야 할 복지의 한 부분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만일 생리대가 문제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는 출산이나 육아, 여성에 관한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요 근래 우리 동네에서도 생리대 무상보급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생리대를 전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사회가 아직은 희망을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지만 인간의 기본 권리에서는 그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는 사회, 보이지 않는 인권도 충분히 보장하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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