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살’입니다. 처지를 비관하는 자살에서부터 동반자살까지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자살유형만 해도 여러 개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자살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은 결코 쉽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에는 고작 열두 살인 초등학생이 학원 화장실에서 자신의 가방끈으로 목을 매 자살한 가슴 아픈 사실이 보도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아이의 자살이유에 대해 캐묻고 자살 이유가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이가 자살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자살은 대체로 고립된 상태에서 유형이나 무형의 심적 압박이 가해질 때 극단적으로 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심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적인 것이 아닌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자살을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가 벌어지고,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도 못 받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일명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 행하는 ‘갑질’이 늘어나고 회사에서는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며 성과제도를 통해 무능력한 사람을 골라냅니다. 사람의 능력이 천차만별이기에 각자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도와가며 협력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잣대로 능력이 없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설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마치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회사에서 내쫓기니 경제적인 능력까지 사라져 처지를 더 비관하게 됩니다.
그런 사회를 너무 잘 아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잘 사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무리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자신은 그런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악착같이 돈벌이에 몰입합니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은 혼자 집에 있거나 학원으로 내몰리며 험난한 경쟁의 틈바구니를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그런 경쟁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도 공부나 외모 등이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은 따돌리거나 못살게 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른들과 달리 친구가 자신의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고립은 어떤 것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아이는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생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도 ‘자살 권하는 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른을 넘어 아이들에게까지 자살을 권하는 사회, 이것은 우리 사회가 깊은 곳까지 썩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이상지표입니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명백한 타살입니다. 그것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자살이라는 병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 국민들의 성찰, 그리고 환부를 도려내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