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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75. 질문이 사라진 사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왜?”라는 질문을 홍수처럼 쏟아냅니다. ‘2+3=5’라는 당연한 명제에 대해서도 2 더하기 3이 “왜 5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순간 당황하게 됩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배워서 왜 정답이 5가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학은 당연히 공식처럼 외워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마치 어리석은 것처럼 치부돼 감히 질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수학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두 똑같다는 개념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 명의 사람도 ‘3’이고 세 마리의 동물도 ‘3’입니다. 사람과 동물과 물건은 다른데도 사람 세 명과 동물 두 마리를 합치면 무조건 ‘5’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물방울 두 개와 물방울 세 개를 합친다고 그것이 반드시 물방울 다섯 개가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2’와 ‘3’을 더한 정답이 무조건 ‘5’가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잘못일지도 모릅니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아이들은 어른들의 고정된 시각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쏟아내는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철학자입니다. 철학의 기본이 바로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그런 꼬마 철학자들을 지극히 평범하게 만드는 건 결국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질문하지 못하게 하고, 어른들에게 질문하는 순간 그 아이를 버릇없다고 치부하고, 알려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해서 사고를 닫히게 만듭니다. 위험한 순간에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그와 비슷할 겁니다. 내 생각이 옳고 너희들의 생각은 신뢰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바칼로레아’라는 대입시험을 치릅니다. 그 시험은 우리나라처럼 정답을 골라내는 객관식이 아니라 몇 개의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주관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쓰게 됩니다. 정답은 없지만 논리가 필요하고 이유를 들어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대입시험 문제는 전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어 한동안 회자하며 서로 의견을 나눕니다. 어려서부터 길러온 ‘왜’라는 생각이 그들의 생활 속으로 녹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왜’라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온갖 비리와 권력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이 감추는 것을 제대로 알고 근본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십 번 ‘왜’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도,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주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왜’라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조금은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여태 그렇게 지내왔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며 질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우리 사회를 고인 물로 썩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왜’라는 질문을 잊은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이 결국 우리를 썩어가는 물속에서 숨쉬기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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