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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54. 이 시대의 어른

예전부터 동네에는 반드시 어른이 계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나이가 드신 분들을 어른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접했고 그 앞에서는 언행을 조심하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불러 야단을 치셨고 설령 내가 야단을 맞았다 해도 잘못을 수긍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그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행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른이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심지어 나이든 게 무슨 벼슬이냐며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살아있는 지옥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런 지옥에서 생명이 자라고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니 참담하고 슬픕니다.


지역이든, 가정이든, 학교든 우리 곁에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른을 존경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런 어른을 중심으로 해결점을 모색하고 화합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논어에는 “군자는 세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근엄하고, 가까이 보면 온화하고, 말을 들으면 바르고 엄숙하다(子夏曰 君子 有三變 望之儼然 則之也溫 聽其言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스승을 비유한 말인데 이 시대 어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절제된 위엄이 있지만 가까이 대할 때면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가진 사람, 그리고 말 한마디에도 지혜와 통찰력이 담겨 있어 그 말 한마디에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어른’이라는 말이겠지요.


얼마 전에 우연히 한 행사장에 갔다가 오랫동안 생각하던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함평이씨’, 종중이 주축이 되어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 주는 행사였는데 그 관계를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른들은 앞에서 끌어주고 후손들은 그런 어른들을 믿고 따라가는 모습, 어른들은 후손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45년째 이어왔다는 장학금 전달식에는 반드시 본인이 참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조의 묘에 참배하고 난 뒤에야 장학금을 주는데 그 이유는 선조들이 이 장학금을 만든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라는 의미, 그리고 이렇게 깊은 뿌리를 가진 집안이니 후손들이 함부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무언의 가르침이 담겨 있어 가슴 뭉클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집안의 어른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 성년이 된 어른들이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후손들이 그런 든든한 어른들의 보살핌을 통해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요. 든든한 어른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이 시대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자화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함평이씨 집안에서만이 아니라 이 사회, 우리 지역에도 이런 든든한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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