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박종태 님

“잘 나지도 않은 사람, 뭐 볼 게 있다고 찍어.”

by 산들바람


2019년 5월 18일 새벽 2시, 글쓰기를 마치고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으로 갔다. 자욱한 구름이 해를 가려 원하던 일출을 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호텔 썬쿠르즈’ 쪽으로 갔다.


박물관 출구이므로 출입금지, 흡연금지, 수상 레저활동 금지, 몰카 금지,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 담배 판매금지, Do not enter, 투숙객 외 관광객 출입금지. 무슨 금지가 그렇게 많은지.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괜한 치기가 올라왔다.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싶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오기를 부리며 계속 전진했다. 그 끝에 마치 요새와 같은 ‘어촌 마을 작업장’이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 작업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니 본능이 깨어났다.


찍고 싶다.


“일하시는 모습 잠깐 구경해도 돼요?”


사진을 찍겠다는 저의를 숨기고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는 힐끗 쳐다보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일단 내쫓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ㅡ 그물 정리하시는 거예요?

ㅡ 요즘 수확은 어떠세요?

ㅡ 언제부터 여기서 일하셨어요?

ㅡ 일하기는 어떠세요?

ㅡ 힘들진 않으세요?


아저씨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았고 여러 질문에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아서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이렇게 무뚝뚝한 아저씨는 처음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에 얻은 답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대답이 없었다. 그보단 긴장해서 질문만 하고 듣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자 돌아갈까도 싶었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때, 시도할 엄두를 못 낼 것 같았다. 그래서 뻔뻔한 마음을 장착, 친해지고 싶어서 주위를 뱅뱅 도는 꼬마처럼 아저씨가 작업하는 걸 지켜봤다.

아저씨는 초록색 그물에 걸린 갈색 게를 일일이 빼내고 있었다. 그물을 다시 쓰기 위해서 그물 정리를 하는 거였다. 게 다리에 난 뾰족한 가시가 그물에 엉켜서 잘 빠지지 않았다. 빼내는 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보였다. 아주 성가신 일로 여겨졌다.


아저씨는 돋보기를 코에 반쯤 걸치고 한 마리 한 마리 게를 빼냈다. 꼼짝 않고 앉아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서, 내 눈에는 수도승처럼 보였다. 이 일을 얼마나 해오신 걸까. 이 일로 자식들을 다 키우셨겠지. 검게 그을린 아저씨의 얼굴이 그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찡했다. 나는 어설픈 사직작가 코스프레를 벗어던지고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내 얘기를 했다.


“요즘 미스트롯이 인기인데, 보셨어요?”

“미스트롯?”

“트로트 가수 100명을 경쟁시켜서 1등을 뽑는 건데요. 송가인이 1등 한 프로말예요.”

“아!”

“아저씨는 누가 제일 좋으세요? 저는 송가인이 좋은데, 엄마는 정미애가 제일 잘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노래는 송가인이 시원하게 잘 뽑더구만”

“그렇지요!”


엄마와 미스트롯을 같이 보며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처럼, 트로트라면 아저씨랑도 할 얘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트로트가 아저씨와 나 사이를 한결 가깝게 해주었다. 트로트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이거에 찔려”


아저씨는 바닷물이 물든 목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게의 집게발 가시를 가리켰다. 그물을 손질하다 보면 가시에 찔리는 일이 많다며 아프다는 내색을 했다. 간결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긴 말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털어놓으시니 명치끝이 찌릿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에구’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ㅡ 여기에 내려와 한 달 만이라도 진득이 살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

하루, 몇 분 잠깐 얘기하고 사진 몇 장 후루룩 찍고 가는 게 아니라. 같은 일도 해보고 같은 어려움도 느끼며 어촌 사람들의 진짜 사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제가 사진 찍고 글 쓰고 하는데요. 내려와서 살면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을까요?”

“내려오게?”


곧 내려와 살겠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진가로서 작업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중의 하나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이왕이면 바닷가 마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정동진이면 어떨까.

"일하시는 모습 찍어도 돼요?”

“잘 나지도 않은 사람, 뭐 볼 게 있다고 찍어.”

“제가 잘 찍어 드릴게요.”

“그럼 찍어봐.”


아저씨를 중심으로 빙 돌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한 바퀴를 다 돌았을까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은 다음 아저씨 상체를 타이트하게 잡았다. 카메라 속 아저씨의 이목구비를 관찰했다. 긴꼬리의 날카로운 눈매, 둥근 콧방울, 굳게 다문 입술. 아저씨 표정을 살피며 셔터 누를 때를 기다리는데 무뚝뚝한 게 아니라 근엄한 거였구나 생각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저씨, 여기 한번 보세요.”

“누군지 참 잘생겼다.”


아저씨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다물려고 애쓰셨다. 어른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다. 아저씨에게 찍힌 사진을 카메라 액정으로 보여드렸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사진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아저씨가 솎아낸 게 중에서 단단하게 ‘여문 게’를 싸주시겠다고 했다.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인심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불청객이 아니라 반가웠던 손님으로 인정해준 것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비린내 나는 걸 서울까지 가지고 올라올 엄두가 안 났다. 다음에 오면 그때 챙겨주세요, 하고 뒤돌아 나왔다.

아저씨ㅡ박종태님의 만남을 통해서 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걸까.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이야기로 지어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아저씨와 짧은 몇 마디를 나눈 후 아저씨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쓰는 건 사기다.


우연히 만난 박종태님을 사람으로 알고 싶었던 건지, 내 사진첩에 추가할 대상으로 여겼던 건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후자라는 생각에 며칠을 끙끙 앓았다. 고민의 답을 얻으려 30년 동안 인터뷰 사진을 찍어오신 곽윤섭 선생님께 여쭤봤다.


사진을 찍으려면 최소 3번은 찾아가야 한단다. 처음에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안면을 트고, 두 번째 갔을 때는 시간 여유를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사진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은 사람으로 역사한다. 하늘이 이걸 가르쳐주기 위해 박종태님을 만나게 해준 것 아닐까.


박종태님을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택배로 보낼 생각이다. 그렇게 인연을 잇고 다음에 정동진에 내려갈 일이 있거든 아저씨, 바로 박종태님과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바닷가 마을, 어부의 삶은 서울 깍쟁이와 어떻게 다른지 사는 얘기도 듣고, 일하시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그러함에도 뿌듯했던 이야기를 여쭤봐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겠다.


“아저씨 손을 찍어도 될까요?”

“뭐 볼 게 있다고 손을 찍어?”


“저는 하얗고 매끄러운 손보다, 집게발 가시에 수없이 찔려도 계속 일하는 아저씨 손이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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