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야 비로소 맞이하는 안식

#03.《잘 자요, 달님》

by 서정연


커다란 초록 방 안에 전화기 하나, 빨간 풍선 하나. 그리고 그림 속에는 그것뿐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스무 날. 아직은 이 세상의 밤이 낯설어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달랩니다. 아이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 아이가 품은 생명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팔 끝이 묵직해져 옵니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글과 클레먼트 허드의 그림이 담긴 **《잘 자요, 달님》**을 머릿속으로 읊조려 봅니다. 이 책은 아기 토끼가 방 안의 모든 사물에게 "잘 자요(Goodnight)"라고 작별 인사를 건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인사가 20일 된 아이와, 인생의 가을을 지나는 저에게는 참으로 다르게 읽힙니다.


오늘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는 시간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로운."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우리 집 '초록 방' 안에도 인사를 건넬 이들이 참 많습니다. 숨숨집 속에서 곤히 잠든 고양이 ‘보름이’에게도, 캣타워 꼭대기에서 까무러치듯 잠든 ‘또양이’에게도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자요, 달님》한 장면


무엇보다 갓 태어난 생명을 돌보느라 정작 본인의 잠은 뒤로 미룬 채 쪽잠을 청하는, 초보 부모의 고단한 어깨 위에도 "잘 자요"라는 인사를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불을 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인생은 어쩌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말해줍니다.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늘 가진 것들에 다정하게 인사하고 불을 끄는 일이라고요.


모든 것을 비워내고 어둠 속으로 침잠할 때 찾아오는 평화. 그것을 우리는 안식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막 삶의 첫 페이지를 넘긴 아이야. 너는 오늘 어떤 꿈을 꾸러 떠나니?


나는 네가 이 책 속의 아기 토끼처럼, 세상 모든 것들과 평화롭게 화해하고 잠들 줄 아는 '이로운'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한단다.




잘 자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여. 잘 자요, 달님. 그리고 잘 자요, 우리 이로운.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잘 자요, 달님》 |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 클레먼트 허드 (그림) | 이연선 (옮김) | 시공주니어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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