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자유하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했나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에는 규칙이 없었다. 우리는 규칙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만 인간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꺼내놓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그 어떤 금지도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이론을 신봉했다. 딱히 정해진 교본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일본의 애즈원(As-one) 공동체에서 배운 것들과 여러 관념적 이론들이 뒤섞인 결과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믿음은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그리고 그 관념성이야말로 훗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서로에게 묻지 못했던 진실들 말이다.
예를 들어, 공동체 내의 부부를 대할 때도 우리는 '부부'라는 틀로 보지 않기를 강요받았다. "내 남편, 내 아내가 아니라 각자 독립된 개인이다. 그러니 내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함께 산다고 해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애즈원 코스 중에는 실제로 "내 애인이나 아내가 다른 사람과 자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도 있었다. 만약 "그럴 수 없다"고 답하면, 마음속에 어떤 '금기'가 있는지, 사람을 소유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문답이 오갔다.
남녀가 모인 곳에서 이런 논리는 당연히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우동사가 해체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금기 없는 관계'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상처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공동체는 이를 해결하는 대신 쉬쉬하며 숨겼고, 결국 참다못한 사람이 공동체를 떠나는 방식으로 체제가 유지되었다.
당시의 나는 "배우자가 누구와 자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부부들을 보며 '멋지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와, 정말 금기가 없구나! 진정한 개인으로 살아가는구나!"라며 감탄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정작 삶의 구심점은 철저히 '가족'에 있었다. 아이는 꼭 내가 키워야 했고, 면담이나 미팅의 주제는 결국 남편 혹은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말로는 자유로운 개인을 외쳤지만, 실제 삶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렇게 사는 가족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들의 '말'만 보고도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고 착각했다.
이후 '오늘 공동체'에 왔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동사 탐방을 하고 갔던 오늘 공동체는 '부족살이'를 표방하며 부부와 비혼이 한 부족으로 섞여 지내고 있었다. 오늘 공동체에 와서 처음 몇 달간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누가 누구의 배우자인지,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오늘 공동체에는 확고한 규칙이 있었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우선하기 위해, 전체 모임 시간에는 부부끼리 나란히 앉거나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도록 정해둔 것이다. 커플 중심의 분위기가 강화되면 결국 비혼과 기혼이 끼리끼리 나뉘게 되고, 그것이 공동체의 결집력을 해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혼했더라도 각자의 친구와 취미를 가진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가기를 권장하는 구조였다.
우동사와 오늘 공동체 모두 '소유보다 자유'를 말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우동사는 무엇을 독점하고 무엇에서 자유로워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며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감정 흐르는 대로' 방치했다면, 오늘 공동체는 그것을 이성의 영역으로 가져와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 명확히 규정했다. 경계를 넘어서는 말이나 행동이 발생하면 쉬쉬하는 대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 놓고 토론하며 질서를 바로잡았다.
오늘 공동체에 와서야 우동사에서 외쳤던 자유와 독립이 얼마나 허술한 관념이었는지 깨달았다. 우동사의 그 방임적인 자유는 역설적으로 가부장제를 더 공고히 만들었다. 늘 여자들은 남편에게 서운해하면서도 자유로움, 인간다움, 정다움 등의 단어와 다짐으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잘못된 것을 요구하지 못하고 참아내는 바보 같은 인내의 연속이었다. 우동사의 육아 이야기를 들은 외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남자들만 편한 구조네!"
자유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욕구의 폭발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며 어른들이 그 소음과 짜증을 무방비하게 견뎌냈다. "그랬구나..."라는 말만 무한 반복하면서 말이다.
욕구의 절제와 '건강한 좌절'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공동체 밖 세상으로 나갔을 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내부에서도 "이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그 자유의 대가는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하소연과 엄마들끼리의 강한 결속, 육아를 방치하고 개인으로서 남자로서의 삶을 중요시하는 아빠들의 회피로 남았다.
우동사는 그때 진작 끝이 나거나, 아니면 완전히 바뀌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