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었던 공동체 실패담 마무리
엄마의 한탄, 그리고 나의 억울함
"왜 공동체를 좋아하냐? 또 공동체로 살려고 하냐?"
엄마의 질문이자 한탄이다. 그렇게 해봤으면 됐지, 사람 너무 믿지 마라는 말. 엄마 눈에 비친 나는 그저 '사람 믿다가 망한 딸'이었다. 실제로 나는 빚을 졌고, 가진 돈을 다 썼으며 부모님 돈까지 끌어다 썼다. 언젠가 잘되겠지 바라시던 부모님은 문을 닫고 헐값에 파는 과정을 보며 분개해하셨다. 사람 믿다 당했다면서.
나 역시 억울하고 분했다. 원망했다. 평생의 안전망이라더니, 나의 명의와 생애 첫 대출을 다 갖다 쓰고 이렇게 없어진단 말인가 사기당한거같다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
우리 모두는 그저 어렸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나의 결정이었고, 나의 믿음이었다. 공동체의 시작은 분명 행복했고 즐거운 순간이 많았다. 다만 허물어지고 균열이 생길 때, 그것을 예민하고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새로운 공동체에 와서 공부하며 살아보니 더 명확해졌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때의 내가 부끄러워 글쓰기가 괴로운 날도 있었다. '이렇게 해볼걸', '이건 이렇게 풀어야 했는데' 하는 뒤늦은 깨달음들. 그때의 우리는 그저 문제를 넘기기에 급급했다.
지금 누리는 이 품이 크다 보니, 예전에 스쳐간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 공동체의 깊은 맛을 보지 못한 채 "아우 다시는 공동체 안 해!"라고 외치며 떠나간 그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럼에도 다시 공동체를 꿈꾸는 이유
여전히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 후 나를 깎아가며 변화하는 고통, 그 저항감과 불편함을 뚫고 나갔을 때 마주하는 더 큰 기쁨. 생경하지만 내 애인, 내 가족, 내 새끼 말고도 타인과 '깊은 관계'가 가능하다는 감각.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서 정말 드문 행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감정에 취해 우리동네사람들에 대해 "저 사람들이 진짜 나쁜 놈이야, 나는 피해자야"라고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다 같이 어렸고, 다 같이 아이처럼 굴었을 뿐이다. 나라고 뭐 달랐나.
피해자에서 탐구자로
이제는 "나는 피해자 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와 보려 한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더 나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아픈 복기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감각 덕분이었다. 혼자 쓰는 일기장이었다면 흐지부지했을 것이다. 부끄러운 실패담을 브런치에 공유하며 내 상처도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기록을 함께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음엔 조직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공동체가 가능할까를 공부하면서 써보려고 한다. 진짜, 정말. 공동체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