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처럼 살라
언젠가부터 나는 느티나무를 자주 떠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 한쪽이 저릿했고, 상처가 되살아오는 느낌에 눈물이 먼저 고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느티나무는 슬픔이 아니라 반가움, 상처가 아니라 만남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변화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그냥 지나가던 우리 동네 길가에서 오백 년을 버틴 느티나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래된 나무가 내 집 앞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마치 처음 보는 얼굴처럼 낯설면서도 친근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걸어가다 스친 그림자 속에서도, 버스 창밖 풍경 속에서도 느티나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는 세상을 좁게 바라보았다. 마음이 닫혀 있었고, 상처가 시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티나무를 알아보던 순간 이후, 세상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동네를 지키는 느티나무를 보러 다닌 것이 아니었다. 그 나무에게서 깊은 삶을 배우고 싶었다.
수백 년을 버틴 느티나무의 뿌리와 가지,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는 법, 때를 기다리고 순리를 따르는 법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느티나무는 더 이상 상처의 표식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 하나의 삶이었다.
그림이 되고, 사랑이 되고, 그 자체로 나에게 말을 거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도 웅장함, 고마움, 존경 같은 감정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를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
그렇다면 나도 자연처럼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지금의 나는 마치 가을 같은 시기를 살고 있다. 생각이 무르익고, 마음이 조용히 깊어지는 계절.
풍성한 열매를 맺은 가을. 그렇다면 굳이 봄을 흉내 내지 않아도, 겨울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내가 서 있는 계절을 나답게 살아내면 된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면, 춥다고 불평하거나 도망치기보다는 겨울다운 내 마음으로 서 있으면 된다.
눈을 이고도 묵묵히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때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자연의 순리 안에서 나를 맡기는 것.
억지로 시작을 당기지 않고, 이미 지난 것을 붙잡지 않으며.
삶은 누가 해석해 주는 기적이 아니라, 내가 겪고 견디며 서서히 익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느티나무를 알아본 눈, 그 나무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들.
그것은 누군가가 대신 준 의미가 아니라, 내가 내 삶으로부터 스스로 얻어낸 답이다. 계절은 여전히 바뀌고,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느티나무가 제자리에서 네 계절을 견디며 수백 년을 살아왔듯이, 나 역시 나만의 철을 통과하는 중이다.
중요한 건 정답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살아 있음이 느티나무처럼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