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게 말이지

지나고 나면 아주 사소한 것조차..,.,

by stellaㅡ별꽃
공원에 핀 백일홍ㅡphoto by 황성자

"여울이가 십리 밖에서도 딸내미 차 소리를 듣나 보구나. 현관문 앞에서 어찌나 끙끙대는지 아까부터 난리다."


차가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더 먼 거리에서 달려오는 엄마의 차 소리 여울이는 촉으로 느꼈었나 봐.

여울이가 낑낑대기 시작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할머니는 세상에서 여울이가 젤로 예쁘고 영리하다고 하셨어. 아침부터 머리를 곱게 땋아서 색색깔로 묶어주시고 동무하며 여울이랑 둘도 없는 친로 지내셨지.


요즘 매일 여울이 안부를 물으시며 가슴 아파하시는데, 아마 늙어가는 당신 모습을 반추하시는 것 같아.

동물병원 입원실ㅡphoto by 황성자

두 번째 면회 갔을 때 굳게 잠긴 병실 문과 진료실이 다소 거리가 있었는데도, 갑자기 다급하게 짖는 소리

여울이란 걸

단박에 알아차렸지.

마음이 급했어.

기력이 없는 상태라 행여 탈진할까 걱정이었어. 의사 선생님과 면담도 대충하고 달려갔지. 중환자실 좁은 방에서 제법 넓은 일반병실로 내려와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더구나.

학의천 징검다리ㅡphoto hy 황성자

혹시 버림받은 건 아닐까 두렵고 상심에 차 있을 것 같어. 가족들이 매일 면회 오는 걸 알고 나서 밥도 조금씩 먹고 활기를 되찾았다는 그 말이 참 좋더라.

옆에서 치료받는 냥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병실에 입원해 있던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암 수술을 한 리트리버가 의젓한 자세로 병실을 한 바퀴 도니 다들 얌전해지더라. 괜찮다고 위로도 한 모양이지.




망가진 신장 그렇지만 치매 증상이 있다니 어쩌면 리 사람이랑 똑같니. 병들고 늙어가는 것이.


산책하다 꼭 이곳에서 여울이랑 쉼ㅡphoto hy 황성자

오늘도 퇴근길에 공원을 한 바퀴 걷다가 여울이랑 앉아서 쉬던 벤치에서 뒤늦은 일기를 쓴단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상관없어. 여울이의 흔적을 띄엄띄엄이라도 남겨두고 싶었어.


백일홍도 피고, 늦여름 매미도 울고, 겁도 없이 껑충껑충 뛰어다니던 징검다리도, 잉어 떼도, 두루미도 모두 다 잘 있네.

지금은 어지간한 곳은 안고 다녀야 할 만큼 쇠약해진 여울이, 청력 시력도 점점 나빠지니 마음만 쓰이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게 참 속상하다.

천변의 사이좋은 청둥오리 한쌍ㅡphoto by 황성자

어제는 작은오빠가 그러더라.

"시간이 지나면 여울이도 떠나보내야 하겠지. 그런데 가족들이 아무도 없을 때 홀로 가게 될까 봐 요즘은 그게 제일 걱정이야. 여울이 두고 외출하는 것도 늘 걱정이고. 내 무릎에 누워서 편안하게 떠나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우리 여울이 입원 이후 많은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어.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밀쳐두었던 책도 펼쳐보고, 사람과의 관계도 돌아보고.

우리 여울이는 아픈 병중에도 애교를 부려서 늘 웃게 했데. 화를 내거나 불평하거나 그런 적이 없고 늘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줬어.

여울이 아기때 모습ㅡphoto by Lee


그런데 말이야 사람은 가끔 이건 아닌데 알면서 행동을 정반대로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래서 후회하고. 내 못난 모습보다 다른 사람의 겉을 보기에 바쁘진 않았었나 요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적 외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란 때론 쉽지 않은 것도 같아.


오늘은 여울이가 좋아하는 오이를 조금 가져갈 거야. 상큼한 거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잠도 푹 자고, 밥도 좀 먹고, 변도 봤다니 기운이 넘쳐서 전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함이라도 질렀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면 아주 사소한 것도 다 그리워지는 법인가 봐.



시간이란 게 말이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