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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Sep 19. 2021

그 시절 사춘기 연애는

"탕!  타당 탕탕!"

중봉리 다리(충북 오송과  조치원을 잇는 다리) 버스정류장 공중으로 총탄이 날아오르고,

그녀의 교복 치마는 훌러덩 뒤집혀 아이스케키를 하고 말았다.



 "누나! 누나아~~. 낼부터 마을버스 타면 절대 안 돼. 내 친구가 누나 총으로 쏴 죽인댔어. 진짜야. 걔는 한다면 진짜 하는 애라니까."


어느 여름날, 2% 부족한 육촌 동생은 오창 집으로 가지 않고 극과 극의 거리에 있는 그녀 집으로 찾아왔다. 입술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 친구가 누군데? 건방지..."

"태석(가명)이. 종자태 사는 애 몰러?"

"첨 듣는 이름이야. 그리고 걔뿐만 아니라 버스 타는 애들 잘 몰라."


부끄럼이 많아 누굴 잘 쳐다보지 못했던 그녀는 한 살 아래 육촌동생 친구를 알 턱이 없었다.  여러 번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녀가 대답을 안 했다는 게 이유라고 했다.



"야야! 내일은 꼭 그 남자애 이름이 뭔지 알아내기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

은 탄식을 쏟는다. 얼굴이 사내아이답지 않게 뽀얗고 귀티가 나는데 항상 이름표를 손으로 가리고 다니는 남학생이 있었다.



다음 인터넷 캡쳐

동네 앞 신작로를 걸어 나가 덕골을 지나고 연재와 만수가 합쳐지는  병목구간으로 접어들면,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반기는 들판을 난다.

덕골에 사는 덕순이를 불러 좁다란 논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시는 덕분에 사택을 쓰는 선애네 집도 지난다.


만수초등학교를 지나면 넓은 신작로가 나오고 남학생들의 자전거 질주가 시작된다. 좋아하는 여자애를 앞자리에 태우고 가는 대범한 아이도, 좋아하는 티를 차마 내지 못한 숫기 없는 남자애는 가방을 채서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몇몇 무서운 남자 애들 때문에 애고 어른이고 늘 긴장하는  쌍청이란 마을을 지나 미호천 둑방길로  접어든다.  


십오 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통학하다 보니 시간을 아끼려 손가락에 한자나 영어 단어장을 들고 걷거나, 노트를 들고 시험공부를 하며 걷는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좋아하는 여자애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놓고 도망치는 남자애도 있다.

아주 가끔 그녀 이름을 합창하는 남자애들 때문에 부끄러운 것 같기도,  화가 나는 것 같기도, 좋은 것  같기도 한 감정이 한데 섞이면 심장은 멀미를 다.


미호천 다리를 건너기 전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청주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녀 학생들은 학교별로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이미 만원이 된 버스에 안내양은 온몸으로 학생들을 밀쳐서 구겨 넣는다. 버스 문을 손바닥으로  '탕! 탕!' 치며 "오라 잇!" 소리치고  몸을 뒤로 돌려 엉덩이로 한번 더 승객을 다져 넣는다.  앙손으로 버스 문 기둥을 부여잡 문이 닫히지도 않은 채 버스는 청주 가로수 길을 질주한다;

다음 인터넷 캡쳐

 만원 버스에서도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 누가누가 사귄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때 당시 그녀가 다니는 학교 교복이 예쁘기로 소문이 났었는데, 특히나 여름 하복은 누가 입어도 예쁠 만큼 눈에 띄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초록색 플레어스커트와 깃이 초록인  흰색 상의를 입여고생들은 하이틴  잡지 모델 같았다. 다만 스커트 재질이 은 데다 플레어스커트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훌러덩 뒤집혀 마릴린 몬로가 되어버렸다.


제천이나 음성, 충주, 괴산, 보은, 미원 등 충북 도처에서 올라온 아이들은 대부분 자취를 했다. 거리가 애매한 그녀의 동네 아이들은 여명의 빛이 들기도 전에 집을 나섰고, 둥실 달이 떠오를 즈음 집에 도착했다.


날이 점점 밝아지는 등굣길은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하굣길인데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중봉리 다리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놓치는 날은 그야말로 낭패 중 낭패다.




그녀는 육촌동생의 충고를 잊은 채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바람은 아이스케키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갑자기  등에 서늘한 기운이 업혔고. 그녀는 정류장 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남자애의 살벌한 눈빛을 보았다. 옆구리에 장총이 들려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쪼그라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떡장수 아주머니가 떡 광주리를 머리에 이어야 한다며 같이 들자셨고, 머릿속이 하얗게 바랜 그녀와 아주머니의 두 손은 광주리를 받쳐 든다.

바람은 깔깔거리며 훌러덩 교복 치마를 하늘향해 들어 올렸고, 동시에 '탕!  타당 탕탕!" 세발의 총성이 공중을 갈랐다.



"하나 둘 셋! 밀어 밀어. 아 어떡해. 미안해서 어떡해."


이름표를 가리고 다니던 남자애를 여자 셋이 힘껏 밀어붙이자마자 사건을 주도해 온 친구 애향(가명)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급기야 남학생에게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한다,


"아 어떡해. 그 애 이름이 임. 신. 중 이야."


어느 날부터인지 내 친구랑 그 남자애가 손을 잡고 다녔다. 육촌동생 친구는 누나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했다는 알을 전해달라 했단다.

며칠 전 모카드사 인공지능 상담원이랑 통화를 하다,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란 생각과 인간의 감성이 점점 사라지는 건 아닐까 란 서늘함을 동시에 느꼈다.  요즘, 아니 종종 나는 고향이 시골, 그것도 깡촌이었단 사실에 정말 감사한다. 꺼내도 꺼내도 샘물처럼 솟아나는 추억은 여러모로 변화무쌍한 시절에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가면서 나는 느림의 시간을 여행한다.

#사진ㅡ인터넷 다음에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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