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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Oct 26. 2019

하얀 나비와 베르베르족 소녀

저 멀리서 초록색 치맛자락이...


문득 차 안으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다. 나풀나풀 춤을 추듯 차 안을 한 바퀴 돌던 나비는 이내 몽환의 언덕으로 사라진다. 이상했다. 여긴 꽃 한 송이 볼 수 없는 건조한 도시 마라케시의 변두리 마을이다. 한낮엔 섭씨 50도 가까이 오르내린다.

사하라 가는 길에서 만난 소년이 만들어 준 낙타

떠나오기 전부터 난 공황증 환자처럼 몹시 아팠다. 이곳에서도 무겁게 짓누르는 무언가의 무게가 여전히 나를 압박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장이 탈이 나서 많이 아팠다.


하얀 나비가 날아들었어. 차 안을 천천히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탈진한 나는 독백하듯 중얼거렸고, 하얀 나비는 크나큰 행운을 상징한다며 그들은 나를 행운의 여신이라 불렀다. 사하라로 향하는 여정이 무사하길 바라는 그들은 내 손등에 입을 맞춘다.


기억이 나지 않는 마을ㅡ사하라 가는 길ㅡphoto by 황성자

유칼립투스 나무와 선인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엔 봇짐을 실은 당나귀와 자동차가 달리고, 붉은빛 황톳길에 세워진 밥 말리의 초상화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Tizi N Tichka 언덕ㅡ두 마리의 아나콘다  모양이라 함ㅡphoto by 황성자

Tizi N Tichka 언덕을 넘은 후부터 행운의 여신이 악수를 청해왔다.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푸른빛 두건과 물, 호두를 선물 한 노점 청년, 뙤약볕에 앉아 오아시스를 바라보며 혼자 놀던 소년은 마른풀로 내게 낙타를 만들어 주었다.

젬비아를 연주해 보라던 뮤지션


젬비아를 연주해 보라며 여행자에게 기꺼이 악기를 내어주던 붉은빛 캐니언 카페의 베르베르족 남자 뮤지션, 장미로 만든 잼과 빵을 대접하던 장미마을의 여인, 아름다운 베르베르족 여인은 내게 따진을 만들어 주었.


파란색 터번과 호두 물을 선물해 준 총각(?)


들짐승의 슬픈 울음소리가 고막을 찢듯 아프게 들리던 밤길을 지난다. 바로 눈앞에서 모래를 휘감아 오르는 거대한 폭풍 토네이도를 본다. 공포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나풀거리는 하얀 나비. 그렇게 나비는 끊임없이 내 의식 속을 날고 있었다.


사막의 낙타들ㅡphoto by 황성자

하얀색 질레바를 입은 남자의 손에 잡힌 핸들이 거칠게 꺾인다. 척박한 대지를 달리는 자동차 뒤로 먼지바람이 인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가 부드럽다. 난 사막을 걷고 있었다.


망연히 어딘가를 응시하던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묘한 언어로 단호하게 나를 제지한다. 난 그의 영혼을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터번에 가려져 눈만 보이는 그는 성서에서 걸어 나온 걸까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베르베르족 소녀(소녀는 내게 저 낙타를 팔았다)ㅡphoto by 황성자


초록색 얇은 원피스를 몸에 감아올리던 바람이 방향을 튼다. 사막 저편에서 나풀거리던 초록색 천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천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베르베르족 소녀다. 소녀의 손엔 낙타가 들려 있고, 나는 그 낙타를 산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눈빛에 빠진 나는 수천 년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공황증처럼 괴롭히던 아픔이 소멸한다.


소녀의 초록색 치맛자락이 점으로 보일 때쯤, 나의 초록색 원피스 자락이 몹시도 펄럭거린다. 문득 백색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나비 한 마리......

(2018년 7월-사하라 사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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