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 가득한 사월의 어느 봄날. 열어둔 창문으로 동편 바람이 건너오고 거실 한가운데까지 햇살이 넘실거렸어.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여울이가 기운차게 뛰어 들어오더라. 머리엔 분홍색 리본을 달고 발목엔 연분홍벚꽃 리본을 묶은 거야.
너무 예뻐 소리를 마구 질렀지. 은갈색 털은 또 어찌나 반짝이던지. 엄마방 침대에 뛰어올라 벌렁 누워 애교를 피는데 혹 만지면 사라지는 건 아닐까 바라만 보고 있었어. 막내 오빠가 젤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여울이. 오빠들이랑 끌어안고 쓰다듬고 깔깔거리는데 너무 의젓하게 여울이가 말을 하는 거야.
"저 정말 잘 지내고 있는데 가족들이 너무 걱정을 해서 한번 다니러 왔어요. 이젠 그만 슬퍼하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슬며시 여울이 배를 만져봤어. 토실한 배, 털이 참 매끄럽고 따뜻하더라. 만져도 사라지지 않는 여울이를 온 가족이 에워싸고 놀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봐.
침대 위에 분홍빛 꽃잎 하나남기고 여울이는 떠나버렸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프고 그립던 마음 가운데로 봄바람이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어. 여울이의 온기가 며칠 동안 손끝에 남아있더라.
"여울이가 다녀갔어.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가족들과 놀다 자고 가더라.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네. 아직도 엄마 손끝에 여울이 온기가 남아있어."
"여울이가 진짜 잘 있나 보네. 다행이야. 보내달라는 건 아닐까. 저 유골함에 있는 게 답답하기도 할 거야."
여울이가 뛰어놀던 천변엔 햇살이 눈부시고 만개한 벚꽃잎이 바람을 탄다. 라일락 향도 짙어졌다. 여울이를 가장 아름답게 보내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사월 벚꽃나무 아래 묻어줘야지 생각했는데 막내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벚꽂나무 아래 여울이
여러 번 산책 끝에 조망이 좋은 벚꽃나무 그늘을 찾아낸 막내. 바람 좋고 햇살 따스하고 벚꽃잎 날리는 봄날이 찾아오길 기다리다 이천이십 년 사월 구일 오후 두시쯤 천변을 찾았다.
눈여겨봐 두었던 벚꽃나무 그늘 아래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번갈아 땅을 파고, 새하얗게 부서진 몸을 땅속에 묻어주고 흙으로 덮고 발로 꼭꼭 다진다. 여울이 사진이 잠시 그 위에 머무르고 이내 나뭇가지엔 새가 날아든다. 긴 울음소리와 함께 새는 햇살 속으로 사라지고 연분홍 꽃잎이 바람을 타고 따라간다.
벚꽃 날리는 이 길을 유난히 좋아했었지. 꽃길을 신나게 달리는 여울이의 은갈색 머리털이 바람에 뒤로 젖혀지면, 앙증맞고 어여쁜 얼굴은 더욱 도드라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어.
사계절 너를 지켜줄 나무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너를 묻고 일주일 만에 그 자리엘 가보니 꽃잎 대신 푸릇한 이파리가 나왔더라.
사계의 변화를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뛰어놀려무나. 언제나 같은 마음이었던 따뜻함을 남겨주고 간 여울이의 사랑을 시절 벚꽃으로 기억할게.
이젠 정말 너를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네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연분홍 꽃잎의 진실이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될 거야.
여울이 이야기를 마칩니다.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 잘 돌보시고 어려운 시절 잘 이겨내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