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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rant lulu Dec 25. 2023

산타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

feat. 삼나무향 커피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선물을 받을 거야.”

“산타 할아버지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눈 지인과의 대화였다.

산타도 바쁘니 선물을 기대하지 말라는 농담이었다.

     

천년만년 절대 동안(?)일 것 같은 산타 할아버지는 해마다 전 세계 인구에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선물 보따리를 실어 나른다. 그건 어릴 적의 순진한 생각이고.


그 산타는 지구의 80억 인간에게 하룻밤에 다녀가기는 무리일 것인데. 뱃살이 두둑해 체력도 달리고, 알이 작은 안경을 써도 눈이 침침하고, 머리는 벗어져서 빨간 모자를 써도 춥고, 호호호호 눈웃음치며 하얗고 긴 수염으로 호방하게 웃는 페르소나를 연출하려면 입가에 경련도 일어날 테고.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구분하기도 난감할 뿐더러, 기억력도 흐려져서 작년의 아이가 올해는 어른이 되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뒤바꿔서 선물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로 혼선이 빚어지고, 나날이 더해가는 교통체증으로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도 빠른 길로 안내한다면서 엉뚱하게 멀리 돌아가니까 루돌프도 헥헥거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얼른 일을 해치우고 산타 할머니랑 데이트도 해야 돼서 산타 할아버지의 마음은 이래저래 부산하다. 일 년에 반 이상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니까 크리스마스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나머지 반년을 소모하기에는 일정이 벅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해 가면서도 마음 한켠은 정말 할머니가 되어서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다. 그러려면 매년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할 터인데. 올해는 어떤 일을 착하게 했나, 내년에는 어떻게 착하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잠잠히 하게 된다. 연말연시를 맞아 성탄절은 더욱 경건하고 거룩해지는 시간이다.


삼나무 향이 시원하게 퍼지는 오늘의 커피는 산타 할아버지가 계신 핀란드의 침엽수림을 떠올리게 한다. 구운 빵의 단내가 기분좋게 이어지고, 황도 통조림의 달콤함과 천도 복숭아의 신맛이 가지런히 나와서 따뜻함이 남는다.


산타는 지금쯤 일을 마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걸까? 이런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벽난로 앞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암체어에 앉아서? 그러고 보니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계획 짓는 날들이 되어가길 바랍니다.





Santa is resting with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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