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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28. 2017

착한 사람 콤플렉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어느날 갑자기 나를 싫어하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는 거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물어보자니 당사자는 나를 피하던 터라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유를 알았다면 관계를 고쳐볼 엄두라도 냈을 텐데, 이유를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괴로워하는 것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 싫어한다는 감정조차 희미해졌을 때쯤에야 그에게 이유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황망할데가! 그는 자신도 왜 나를 싫어했었는지 그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단지 그 감정의 잔여물만이 남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가 그 당시에도 딱히 나를 싫어하는 데에는 크게 이유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렇게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한대 칠까?하는 갈등도 함께 일었다).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면 그래도 좀 속이 후련하겠는데,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는 때가 더 많다. 저 사람의 치아가 맘에 안 들어서, 팔에 난 털이 지저분해 보여서, 안경에 진 얼룩이 보기 싫어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이유로 한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어지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듯이, 싫어지는데도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살면서 점점 더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누구든 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살다 보면 내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신도 모든 인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나는 신도 아니다. 무책임한 체념 혹은 회피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인정해버리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소주를 5병 마시고도 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나 역시 모두를 좋아하지는 않지 않은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건 굉장한 욕심이고 대단한 오만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하지만,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고 인정하게 되니 나는 아등바등하지 않게 됐다. 나를 향한 공격에는 똑같이 응수하거나, 네가 나를 싫어해도 상관없는데 그걸 나한테 말하는 저의는 도대체 뭐지?하고 말했다(그리고 속으로는 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그 사람이나 나를 위해서도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너는 sns에 왜 그렇게 헛소리를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럼 팔로우를 끊으면 되잖아? 하고 말했다. 살면서 들었던 이런 류의 말 중에 가장 어이가 없었던 말은 연애하려면 sns 좀 줄여라였다. 나는 아직도 연애와 sns에 쓰는 헛소리의 빈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모르겠다. 나는 우리가 타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모든 재앙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의 관심은 sns와 남의 연애 따위를 관계 짓는 한심한 관심과 넓디넓은 오지랖을 뜻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내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시간을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말을 하고 sns에 헛소리를 지껄이는 일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시선을 의식하고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를 싫어할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면 행복해진다.'는 문장은 사실 '밤에는 달이 뜨고 아침에는 해가 뜬다.', '고추장은 맵고 물엿은 달다.', '치킨은 맛있다.' 따위의 문장이긴 하지만, 알면서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으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생각이다.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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