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의 선호
선호의 선호
선호가 출퇴근을 위해 서울역을 지날 때면 그곳엔 늘 노숙자들의 폐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노숙자들은 대체로 무기력해 보였으나 가끔씩 형형한 눈빛을 보낼 때가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다른 노숙자가 두고 떠난 주인 없는 상자를 탐낼 때였다. 더 이상 주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상자를 노릴 때만큼은 그들에게서 무기력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기력하게 있었으므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노숙자들은 마치 그곳이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생겨난 존재들 같았다. 바닥에 깔린 포석, 두꺼운 기둥, 가파른 계단, 그리고 노숙자. 통로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눈에 그들은 마치 인테리어의 일종처럼 보일 뿐이었다. 가끔 노숙자들이 사람들에게 존재를 어필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씻은 지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냄새가 지하철역의 통로를 가득 채울 때였다. 그건 마치 화장실에 식초를 뿌린 듯한 냄새였다. 그러나 냄새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지나갈 뿐, 역시나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아니, 마치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도시에서 노숙자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선호는 그날도 출근을 하며 노숙자들을 지나쳤지만,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팀장의 일장연설을 듣고 난 뒤에는 이미 그들을 까맣게 잊은 뒤였다. 팀장은 늘 회의를 소집해놓고는 필요한 얘기는 5분 정도 한 뒤에 자기 자랑을 한 시간씩 떠들어대고는 했는데, 선호는 그럴 때마다 팀장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오전은 늘 그런 식이었다. 팀장의 회의소집 후 늘어놓는 자기 자랑 앞에서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것. 겨우 겨우 고통의 시간을 인내한 뒤 몇 가지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본격적인 일은 시작도 못했음에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선호 씨, 점심 먹으러 갈래요?”
“네. 뭐 드시러 갈 건가요?”
“평양냉면 어때요? 요즘 tv에서 남북정상회담이다 뭐다 많이 나오니까 괜히 먹고 싶어 지더라고. 더우니까 생각도 나고.”
“네 저는 괜찮습니다.”
물론 괜찮을 리 없었다. 선호는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선호는 '평냉파'보다는 '함냉파'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냉면에 굳이 파를 나누는 일도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선호는 냉면에 대한 호불호만큼은 매우 확실한 사람이었다. 지인들을 따라 정인면옥이니 을밀대니 하는 평양냉면집들을 가봤지만, 그 밍밍하고 심심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을 선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진한 육향이 난다고? 어딜 봐서? 게다가 선호가 식초나 겨자를 뿌리려고 하면 하나같이 지인들은 그를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봤는데, 그 뒤에는 꼭 평양냉면에는 식초를 넣는 게 아니라는 등, 겨자를 왜 넣냐는 등의 핀잔이 이어졌다. 심지어 평양냉면 집에서는 녹두전도 만두도 전부 다 간이 심심했다. 조리 과정에서 실수로 간을 안 했나? 싶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는 남북정상회담 뒤에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냉면집 앞에서 긴 줄을 서는 풍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최고의 냉면이란 고깃집에서 먹는 달콤하고 새콤한 후식냉면이었다.
그러나 직장인에게 있어 평일의 점심메뉴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영역의 것이었으므로, 선호는 군말 없이 팀장을 따라나섰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메뉴를 정하면 그 메뉴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아 몇 번의 점심식사를 거절한 뒤로 선호는 온전히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그는 다시 그들과의 점심식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평양냉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역시나 팀장은 소위 ‘면스플레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인면옥의 뿌리인 어디를 가봤는데 육향이 슴슴하니 괜찮더라, 을밀대가 요즘 맛이 변했더라, 평양냉면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식초와 겨자는 어쩌고... 등의 꼴값을 떨고 있는 그를 보며 선호는 아침에 봤던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정작 북한에선 식초도 겨자도 취향껏 뿌려먹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알아도 아무 소용없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선호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맛의 평양냉면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어차피 팀장에게 평양냉면이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테니까.
식사가 끝난 뒤 카운터로 가서 계산서를 내미는데 팀장이 말했다.
"각자 계산해주세요"
선호는 속으로 '개새끼'라고 외쳤다. 팀장씩이나 됐으면 밥 한 번은 좀 사지 그러냐?라는 말이 아까 먹은 평양냉면을 헤집고 올라왔다. 선호가 카드를 내밀며 자신 몫의 음식을 계산하려는데 그제야 평양냉면의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만원을 조금 웃도는 가격이었다. 선호는 문득 월급의 절반을 쏟아붓고 있는 적금을 떠올렸다. 그는 오늘 저녁도 여느 때처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를 것 없이 똑같았던 회사에서의 오후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그는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사기 위해 회사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만 서로에게 살가운 인사는 하지 않는 편의점의 얼굴들이었다. 선호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도시락을 파는 매대로 향해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제육 도시락 하나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불필요한 움직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계산대엔 늘 보던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낯선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겉모습으로 보아 그는 아르바이트생이라기보다는 점주쯤으로 보였는데, 퍼석한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로 본인이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젓가락 드릴까요?"
"아. 네, 주세요. 감사합니다."
선호가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운 뒤 늘 앉는 창가의 바 형 테이블로 가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던 그때, 화면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박선호 씨, 집주인입니다. 부득이하게 다음번 전세 계약부터는 계약금을 올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
전세금을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문자였다. 뒷 말은 굳이 읽지 않아도 늘 듣던 말이었다. '부득이하게'라는 말을 붙였지만, 전혀 부득이해 보이지 않았다. 선호는 이번 주말에는 직방이니 부동산 등을 돌아보며 바쁘게 지내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는 통에 이사를 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집을 옮기는 일은 늘 성가셨다. 월세나 전세 계약이 끝날 때쯤이면 집주인들은 늘 '부득이한 사정'을 이유로 돈을 올려 받곤 했다. 그렇게 2년 정도마다 계약이 만료되면 집을 옮겨 다녔다. 직장 등의 이유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고 대개는 타의에 의한 이사였다.
편의점에서 식사를 마친 뒤 지하철 역으로 향하면서, 선호는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빌딩들이 불을 밝히며 서 있었고, 그는 저렇게 많은 건물들 중에 자신이 살 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지금처럼 월급의 절반을 적금에 쏟아봐야 집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으는 날은 결코 오지 않겠구나-싶었다. 그는 대학 친구인 한창을 떠올렸다. 한창은 취직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돈을 한 푼도 모으지 않고 여행을 다니거나 사고 싶은 것들을 사면서 월급의 대부분을 써버리는 친구였다. 한창과 술자리를 가질 때면, 늘 그가 그날의 술값을 계산하고는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사는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은 절대로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선호는 문득 달팽이가 부러워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을 갖고 태어나는 존재라니,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서울역을 지나던 선호는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침 출근길에 봤던 노숙자였다. 그는 노숙자들이 가끔씩 보이는 형형한 눈빛을 보이며 커다란 냉장고 박스에 시선을 던지던 이였다. 노숙자는 평온한 표정을 한 채로 비어있는 커다란 냉장고 상자 안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박스 한 켠에는 컵라면 용기와 초록색의 소주병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선호는 그 풍경을 한참 동안 멈추어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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