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은 출근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1호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시계의 바늘은 일곱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보다 이십 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시청역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뛰지 않으면 지각할 것이 분명하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에 사는 선영에게는 드물지만 한 시간 정도 뒤의 일을 미리 예지 할 수 있는 때가 있었다. 아홉 시 출근을 위해 일곱 시 반부터 전철을 기다린다거나, 여섯 시 약속을 위해 다섯 시 열차를 탈 때가 그랬다. 전철은 늦고 빠름 없이 정해진 시간표대로 거의 정확하게 움직이므로, 한 시간도 전에 열차를 타더라도 그녀는 미래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지각을 하겠구나 혹은 약속에 늦겠구나, 따위의 유쾌하지 않은 사소한 미래의 일이었다. 늦을 것이 확실한 상황임에도 방법이 없어 그저 전철 안에서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상황에 선영이 할 수 있는 일이 딱 한 가지 있긴 했는데, 그건 온갖 경우의 수를 가정해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 중 가장 높은 확률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견해보는 일이었다. 납덩이같은 마음을 갖고 한 시간 동안이나 멍청하게 전철을 타고 있어야 한다는 건 고문이었다.
선영이 출퇴근길에 열차를 타고 내리는 백운역에는 스크린 도어가 없었다. 수도권 전철역 중에 스크린 도어가 없는 곳은 이제 몇 군데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자연스레 자신이 사는 동네가 얼마나 변두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전철을 기다리던 그녀는 문득, 그녀는 스크린 도어가 없는 선로에 몸을 던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전철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 '승강장에 진입하면서 속도를 줄이니까 9-1번 승강장 쪽에 가서 최대한 열차의 속도가 빠를 때 던져야 확실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 동안, 열차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그럴 때면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치밀해지는 자신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역시나 선영은 그날 회사에 늦었다. 그녀의 상사는 하필이면 그날따라 일찍 출근했고, 아침부터 그녀는 한 시간이 넘도록 상사의 잔소리와 밑반찬처럼 깔린 자기 자랑을 들어야만 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백운역에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선영은 스크린 도어가 도시의 인간성을 차단해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승객들의 완벽한 안전을 보장해주는 이 미래지향적인 문과, 그런 문 조차 없으면 전철과 자신 사이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도시의 인간성이 얼마나 하찮은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계는 여섯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미래를 예지 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