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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1. 2019

상영

상영은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어설프게나마 평론가로 이제 막 불리기 시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마음으로 평론 일을 시작한 것이 반,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것이 반이었다. 수익은 불안정했으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상영에게는 가장 중요한 직업선택의 요소였다. 그의 일에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 외에도 사람들을 만나고, 명함을 돌리며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인사를 하는 영업 역시 포함되곤 했다. 세상 어느 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그에게 가르쳐준 이는 없었다. 덕분에 그는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깨달아야 했다.


오늘도 어느 영화 잡지사와의 미팅이 잡혀 강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침 열 시. 그는 남들이 한창 회사에 있을 시간에 시작하는 업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 시간의 전쟁통에서 살짝 벗어난 지하철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귀에 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가 상영의 평화를 깨고 들어왔다.


“아니 아저씨 왜 밀쳐요?”
“문 닫힐 뻔했잖아!”
“문이 닫힐 뻔한 거랑 미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이 아줌마가 진짜! 그러게 왜 앞에서 꾸물대고 있어!”


칠십 대에 가까워 보이는 노인과, 그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다. 노인의 한쪽 팔에는 이마트의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장을 본 행색 같지는 않으니 집에서 굴러다니는 쇼핑백에 짐들을 챙겨 온 모양이었다. 지하철에서는 늘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고 언성을 높였다. 세상의 모든 것에 부정당한 사람처럼 그들은 화를 내고 상대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고함을 질러본 적이 언제였더라- 하고 상영은 생각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씨”


누군가 상영을 밀치고 지나갔고, 그의 입에서는 신경질적인 욕설이 날숨처럼 튀어나왔다. 밀치고 지나간 사람은 마치 상영과 부딪힌 적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고함소리는 여전히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방해하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상영은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화나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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