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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28. 2019

꼬장꼬장한 알바생

아르바이트생한테 갑질 작작해라 좋은믈르흘뜨...

사진은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 방 사진

7년 전 군대를 제대했을 때, 동네 만화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만화대여점 아르바이트는 소싯적 만화 좀 좋아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일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난 날이면, 나는 늘 집 앞의 만화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와 산처럼 쌓아두고 읽어대곤 했다. 내게 만화책은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놀이였다.


그러나 만화대여점 아르바이트는 생각만큼 신나고 재밌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간헐적으로 무료했다. 차라리 아예 정신없이 바쁘다거나 아예 할 일이 없다면 괜찮을 텐데, 내가 일한 곳은 손님이 아주 없지도, 그렇다고 아주 많지도 않은 곳이었다. 이제 좀 쉴까? 싶으면 손님이 찾아오고, 이제 만화책 좀 볼까? 싶으면 들어왔던 손님이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오거나 하는 식이었다. 감질나게 행동의 패턴이 끊겨버리니까 무얼 하기에도 애매했다.


근데 차라리 그건 양호했다. 일이 어려운 건 아니었으니까. 나를 정작 더 힘들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행태였다. 맙소사, 나는 우물 안 개구리요 세상 물정 모르는 알프스의 하이디였다. 세상엔 타인에게 무신경하고 무감각하게 무례를 일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나는 그저 카운터에 멍하니 서 있는 감정 없는 키오스크 정도로 보였던 것 같다.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가져와서 아무 말도 없이 카운터에 던지면(물론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도대체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인가. "계산해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면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이 "아 알아서 해"라고 대답한 뒤, 거칠게 봉투를 받아 들고 돈을 던지며 사라지던 사람들. 아마 그들 뒤통수에 대고 낮게 중얼거린 욕 덕분에(개 xx....) 그 사람들은 수명이 1시간씩은 늘었을 거다. 진정 수명연장의 꿈을 꾸시나요? 그럼 아르바이트생에게 막대해보세요.


뭐 그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 만화대여점은 특이하게도 담배를 같이 팔고 있었는데, 덕분에 담배를 사러 오는 아저씨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근데 그 아저씨들이 하나같이 더 가관이었다. 가게 문을 반쯤 열어둔 채 자신이 피던 담배는 한 손에 쥔 채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담배를 주문하는 아저씨가 있는가가 하면(저기요, 그래도 담배냄새 다 들어오거든요), 자기가 늘 피던 걸로 달라며 진상을 부려대던 할아버지도 있었다(할아버지, 여기가 술집입니까?).


뭐, 인정한다. 나도 좀 꼬장을 부리긴 했다. 그 할아버지가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꼭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곤 했고, 만화책과 돈을 카운터에 거칠에 던지면 나도 똑같이 거칠게 놔드리곤 했다.


근데 그거 아는가? 세상은 원래 주는 만큼 받는 곳이다. 나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그들에게 나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할 필요는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자존감을 내가 굳이 내 행동으로 더 떨어뜨릴 필요까지야? 뭐 이런 알바생이 다 있냐고 말씀하신다면, 나에게도 변명은 있다. 나는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분들께는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굴었다. 아니, 손님이 기본적인 것만 지켜주셔도 친절하게 대했다. 어서 오시라 안녕히 가시라 따위의 인사는 당연하고, 어떻게 지내시냐, 이 만화책 재밌더라, 다음번에는 이것도 읽어보셔라 등등. 가끔 빌런과 천사가 옆에 있을 때면, 180도 다르게 그들을 대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왜 내가 생뚱맞게 만화대여점 아르바이트 얘기를 꺼냈는가 하면, 도대체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갑질에 그렇게 분노하면서 자기들도 약자에게 갑질을 해대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백화점 만화방 호프집 커피숍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우습고 만만하고 쉬워 보이는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순간에는 신분과 계급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직장에서 거래처에서 사회에서 보고 당한 갑질을 똑같이 해주고 싶기도 하겠지.


나는 그들이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뭐 그런 뻔한 얘기는 안 하겠다.


사실 안 봐도 뻔한데, 알바생에게 막대하는 당신보다 그 청년들이 더 배우고 더 잘난 사람들이다.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치고 배운 사람 못 봤다. 나중에 회사든 어디서든 윗사람으로 만나서 역으로 갑질 당하고 개고생 하고 싶지 않으면 모두에게 친절히 대하라.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비용엔 당신들이 갑질로 받은 스트레스를 똑같은 갑질로 풀어내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준 모욕이 언젠가는 당신에게 큰 화로 돌아온다는 걸 잊지 말자.


뭐, 이런걸 써도 정작 바뀌어야 될 사람은 여기까지 보고 있지도 않겠지만.

쓰다보니 이걸 왜 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썼으니 마무리 짓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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