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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y 19. 2021

세 가지 트라우마

어린 시절 나의 키워드: 화분, 짜파게티, 비교

흔들리는 화분 속에서 내 짜증 향이 느껴진 거야

당시 우리 가족은, 아버님이 중동으로 일하러 가신 동안 이모네 건넌방 하나에 모여 살고 있었다. 언젠가 일요일 아침, 갑자기 후끈한 구둣주걱 찜질에 잠에서 깨어났다. 1980년대는 ‘사랑의 매’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 어머니가 나를 후두려 패고 있었다. 일단 나는 뭔지도 모르고 죄송하다고 하며 화가 난 어머니의 말에서 정보를 그러모았다. 조합한즉슨, 마루에 있는 화초의 잎을 내가 몽땅 가위로 따 놓았다는 것. ‘나는 아니에요ㅜㅜ’라며 읍소하자 어머니의 몽둥이는 내 동생을 향했다. 동생도 몇 대 맞은 후 자긴 아니라고 울며 도망가자 효자손(이미 구둣주걱은 작살남)은 다시 나를 향했다. 


동생도 아니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너 밖에 더 있어?
당시 이모네 집 마루에는 이거 1/3정도 화분이 있었다

난 그렇게 말썽을 피우는 편도 아니었는데... 계속 맞다 보니 나는 고문당하던 어설픈 민주투사마냥 ‘죄송해요. 제가 했어요’라고 거짓 자백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면 이제 매타작도 끝날 것 아닌가…그러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거짓말을 했다며 어머니는 또다시 매질을 시작했고 사태는 이모가 ‘정민이 왜 혼나는 거야?’ 라며 사태에 개입해서야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정민이가 언니 화초 잎을 모두 따놨다’며 사과했고 이모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어? 그거 내가 아침에 나뭇잎 정리하려고 따놓은 거야. 


잉?… 이제 끝났나 싶더니, 또다시 매질은 시작됐다. 왜 네가 하지도 않은걸 거짓 자백을 했냐고… 다행히 일찍 끝나기는 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때 왜 그랬냐 어머니께 물으니, ‘그때 니가 이모에게 야단맞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어’라며 사과하시더라.  하지만, 그 찝찝함은 계속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이후 난 실내에 수많은 화분을 보면 기분이 찝찝하고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짜파게티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여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먹는 짜파게티 하나 마음대로 먹은 적 없었고↗︎… 앞서 말한 대로 이모네 단칸방에 근근이 모여 살고 있던 우리 집도 돈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도 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가끔 심부름하면 100원, 200원씩 받는 걸 모아서 군것질거리를 사 먹는 게 전부.

최초 모델이 강부자였는지는 가물가물. 경쟁사 짜짜로니는 이경규

1984년 당시 ‘짜라짜라짜자’하던 광고는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그러나 좀체 짜파게티를 먹어볼 수는 없었다. 당시 일반 라면 가격이 100원~120원 하던 때에 짜파게티는 그 제품들보다 50원도 넘게 비싼 150원 이상 가격이었거든. 어머니는 슈퍼에 가서 짜파게티를 고르면 ‘똑같은 라면인데’ 하며 금세 일반 라면으로 바꿔버리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 싶은 건 어떻게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 심부름값으로 받는 잔돈푼을 모아 2주 만에 짜파게티 하나를 기어코 사내고야 말았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맥주컵 두 컵 반을 냄비에 붓고 불을 올리려는데 홀연히 나타나신 어머니, ‘내가 끓여줄게’라며 어머니는 나를 가스레인지 밖으로 밀어내셨다. 좀 촉이 이상했지만 일단 믿고 기다려보자. 고소하고 단짠단짠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드디어 내 앞에 놓인 짜파게티는…

앞으로도 나한테 이렇게 짜파게티 끓여주는 사람은 나랑 싸우자는걸로 간주하겠음

역시 우리 엄마. 제대로 조리법도 안 보시고 그냥 일반 라면처럼 끓이셨네. 난 심하게 실망해서 ‘이게 뭐야! 왜 짜파게티가 이따위야. 나 안 먹어. 물어내’ 하며 짜파게티를 주방 개수대에 내다 버렸다. 결과는 뻔하지. 또 등짝 스매싱당하고 ‘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 ‘음식을 왜 내다 버리냐’며 효자손으로 맞았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요리라는 걸 시작하면서, 나는 전문 요리사나 주방장 등 프로가 아닌 이상 짜파게티는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친구 집이건 MT건, 짜파게티만은 어지간하면 내가 직접 끓이려 노력한다. 이 글 마지막에, 나만의 짜파게티 필살 레시피를 공개할 예정.



내가 마음에 든다면, 굳이 더 노력하려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나름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보통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면 모든 과목을 합쳐 10개 내외를 틀리는 정도가 보통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이건 늘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여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으셨고, ‘실력이 늘어야지 매번 제자리냐’며 혼내시는 것도 비슷하게 유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4  중간고사 때였나 어머니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이번에 7개 이내로 틀리면, 네가 사달라는 조립 모형 사줄게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한 적 없던 만큼,  이런 절호의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지.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끝에 난 기어코 중간고사 토탈 6개밖에 틀리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엄마 나 여섯 개 틀리고 다 맞았어!’ 뛰어들어오는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7반 반장 환구(가명)는 5개 맞았다더라. 넌 부럽지도 않니?


물론 선물 얘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힘이 빠져있는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제안하셨다. ‘기말고사 3개 내로 틀리면 엄마가 네가 원하는 거 해줄게’. 오기가 생긴 나는 또다시 피치를 올려 기말고사에서 딱 2개 틀리는 성과를 내고야 말았다. 채점지를 들고 뛰어들어간 내가 들은 소리는 여러분의 상상속에 이미 스포되었을 듯. 

환구는 올백 맞았단다. 


선물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때부터 난 경쟁을 포기했던 것 같다. 누구를 이기는 게 재밌지도 않았고 무슨 보람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다음부터는 집에서 잔소리 듣지 않을 정도의 성적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더라. 

희한하게도 중학교 시절 나는 선생님들에게 '3년 내내 중간/기말고사 정확히 평균 89점이 꾸준히 유지되는' (피동형이어야 한다. 내가 스스로 노력한 게 아니니) 희한한 놈이 되어 있었다. 난 점수 맞추려고 노력한 적 없는데.

자꾸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 별로 좋아하지 않음

30대 중반까지 그 친구와 비교를 당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환구는 연대 갔다던데’, ‘환구는 이마트 그룹 취직했다던데’ 등등 멘트로 비교를 당했지만, 2008년인가 그 친구가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엄마 환구 짤렸대며?’라고 뼈 있는 소리를 한 이후로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환구야, 미안하다. 니 잘못은 아니지만 나 너 겁나 꼴 보기 싫어했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런 트라우마들이 생각보다 내게 꽤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나는 화분에 담긴 식물은 기르는 건 물론 그냥 보는 것도 싫어하고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분 기르는 게 취미이신 어머니가 화분 좀 날라달라면, 별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 매년 두어 번씩 어머니와 싸우기도 하고. (사실 10kg 넘는 사기 화분 20개면 좋다가도 기분 나빠지지)

또 나는 어디 가서든 짜파게티를 내가 끓이겠다 유난을떠는 것도 모자라 밥과 반찬을 하고 고기를 굽는 등 요리는 대부분 내가 일부러 도맡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사람이 되었. 친구들아 미안하다. 너희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봉사정신 같은 게 아니야. 그냥 마음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니들 요리를 믿지 못하는 거였어. 


대학에 입학한 다음부터는 경쟁이란게 더욱 체질에 맞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생각은 들어도 실천이 안 되고… 노력하면 결국 내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만, ‘노력이란 거 해봐야 뭐 크게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 이런 생각만 들었달까. 또 노력하면 뭐하나 ‘산 너머 산’이라고 힘든 산을 넘어봤자 더 높은 목표라는 산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회사 생활 내에서도 성과 경쟁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도 그것 때문이었으려나?


뭐 그래도 어쩌겠나. 이제 이런 트라우마는 내 걸림돌이나 족쇄 같은 게 아니라, 이제 그냥 나 그 자체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 성격 굳이 고치네 마네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잘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P.S) 짜파게티 집착놈의 필살 레시피

짜파게티 표준 조리법은 물 600ml를 팔팔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간 끓인 뒤 물을 소주 한 잔 정도만 남기고 짜장 수프와 올리브 조미유를 넣고 ‘잘 비비는 것’이다. (이거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른다. 볶는 게 아니라 비비다니…)

내 조리법은 끓는 물에 후레이크와 면을 넣고 잘 삶는 것 까지는 비슷하다. 단 3분간 삶은 후 종이컵 반 컵 정도의 면수를 빼고 체에 면을 밭쳐놓는다. 이후 식용유를 한 티스푼 두른 냄비에 미리 채 썰어놓은 양파를 달달 볶은 후 면과 면수, 수프와 조미유를 넣고 1~2분 달달 볶아낸 다음 그릇에 담아 고춧가루를 쳐서 먹는 것이다. 



[이벤트 공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브런치 100번째 글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를 진행해 보려 합니다. 

좀 귀찮으실 수도 있는데, 제 브런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에 [100] 말머리로 댓글을 달아주세요. 5월 14일부터 5월 21일까지 1주일간 달린 댓글 중 세 분을 뽑아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어설프게 커피 한 잔 보내진 않을 테니 기대(?) 해 보세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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