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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y 18. 2021

세월 따라 변해간 나의 5월, 광주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991년 5월


노태우 대통령 집권 이후, 조금은 자유로워진 분위기를 타고 5월만 되면 대학가는 ‘광주의 진실을 규명하라’며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불법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한양대학교, 건국대학교와 멀지 않았던 우리 동네는 늘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최루가스 탓에 늘 눈물을 흘리며 기침해야 했고, 이미 중학교 때부터 ‘최루가스는 눈을 비비면 안된다’는 ‘생활의 꿀팁’(?)을 어쩔 수 없이 체득했다. 목구멍이 매캐해 질 때마다 어른들은 한 마디씩 욕을 내뱉으셨다.

빨갱이 새끼들 부모들이 고생해서 번 돈으로 공부나 할 것이지


1997년 5월

여자친구와 TV를 보던 중 뉴스에서 전라도에 관한 소식이 나왔다. 별 말없이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던 여자친구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전라도 놈들은 도저히 못믿겠어
출처: 다음 영화 <목포는 항구다> 페이지

겉으로는 순박한듯 ‘뭐뭐 하죠잉’, ‘아따 거시기 허요’ 웃는데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댄다. 갑자기 왜 저러나 해서 자세히 물어봤더니, 어렸을 때 식모로 한 집에 살던 전라도 언니가 집안의 돈을 들고 튄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TV에 나오는 가정부, 깡패나 양아치는 전부 전라도 사람이었던 것 같네… 그 여자친구와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 5월

출처: 다음 영화 <박하사탕> 페이지

휴가 나와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충격을 받아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찾아보았다. 내가 그동안 주변 어른들에게 주워들은 광주에 대한 이야기는 죄다 거짓말이었구나. 급한 성질은 여전해서 황금같은 휴가 기간이지만 득달같이 광주로 내려갔다. 전남대와 옛 전남 도청 터를 돌아보고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죽녹원이 있는 담양으로 향했다. 6시에 도착하니 괜찮은 식당은 죄다 문을 닫았고 문연데라곤 고작 순대국집 하나. 순대국을 시키니 김치가 네 가지나 나와서 신나하니 아주머니가 ‘군인인거 같은데 뭐하러 왔냐’며 말을 걸어온다.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가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쓰벌놈들이 가만히 서있는 대학생을 총으로 후려까고, 
 쓰러진 넘의 아들 대가리를 군화발로 걷어차고…



광주 민주화운동의 소위 가해자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물리적으로 그랬던 것 처럼, 광주를 끊임없이 심리적으로 국민들과 고립시키려고 노력했다. 당시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층민과 깡패, 사기꾼을 전라도 사람으로 등장시켜 끊임없이 전라도 지역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이제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조금은 나아진 것도 같지만 아직도 광주 민주화운동의 소위 ‘유언비어’는 인터넷 상을 떠돌고 있다. 오늘만 해도 김의성 배우가 자신이 나레이션을 맡은 광주 518 항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홍보하는 페이스북 댓글에는 ‘가짜 유공자 가려내라’는 댓글이 달리고, 자칭 ‘보수’라고 참칭하는 미친 유튜버들은 518 관련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폄하하며 돈을 벌고 있다. 

물론 역사라는 바퀴는 그 크기가 겁나게 커서 지구의 자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알고 계시던 유언비어는 <화려한 휴가>와 <택시 운전사> 같은 영화를 시작으로 조금씩 진실로 대치되었고 내 주변에서도 이제 진실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가해자가 버젓이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한 아직 멀었다. 진실이 모두 밝혀질 때까지,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니는 자들과 미친 유튜버들은 최소한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조용히 해주길…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 노래를 꼭 한 번 들어줬으면 한다. 이 노래 시작 부분 박은옥의 목소리처럼,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참고로, 이 노래는 조동익과 함춘호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함께 해 그때의 처절함을 연주와 노래, 사운드로 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이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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