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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May 25. 2021

둘이 먹다 하나도 모르겠는 파란대문 평양냉면 떡볶이

하나 죽어도 모르겠는거 아님 주의

요즘 ‘전국 평양냉면 정복 프로젝트’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붙여, 외근 간 부근에 처음 간 평양냉면집이 있으면 무조건 한 그릇 완샷 하고 오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합정역 부근에서 일을 마치니 또 평양냉면이 생각나더라. 음… 동무밥상은 며칠 전 다녀왔고, 을밀대는 여러 번 갔고 그냥 갈비나 먹을까… 그러던 중 문득 이상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떡볶이계의 평양냉면, 국물 떡볶이의 성지라니!

응? 떡볶이가 평양냉면 스타일이라니.. 달달하고 짭짤하면서 매콤한, 그야말로 자극 덩어리인 떡볶이가 슴슴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원래 오랜만에 신촌 부근 온 김에 서서갈비랑 소주나 1인분씩 조지고 가려던 생각을 싹 접고 따릉이 핸들을 얼른 신석초등학교로 돌렸다. 신석 초등학교 후문을 지나는데 갑자기 보이는 파란 대문… 음 여기인가…

진짜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툭 문을 열어놓은 집. 검색도 안된다. 

조심스레 염탐하듯 두리번거리며 가게를 들어서니 마침 입구에 계시는 주인 할머니가 귀엽게 인사를 건네신다. 내가 어디로 앉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한마디 멘트를 치셨다.

우리 가게 떡볶이 밖에 없어요. 
처음이면 맛이 없을 텐데 괜찮겠어요?

오호… 진짜 평양냉면 느낌의 떡볶이란 말인가? 생전 처음이다 자기 가게의 음식을 맛없다고 하는 사장이라니...  일단 쿨한 척 ‘1인분만 주세요~’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본다. 이미 내 자리 옆 커플은 사발을 들고 국물을 원샷 때리고 내 앞 여고생은 2인분 포장해 가는 중. 오후 세시부터 이렇다니 뭔가 믿음이 간다. 이윽고 나온 ‘평양 떡볶이’의 비주얼은…

저 가위가 필수품

두둥. 음, 국물이 멀겋지도 않은데… 멸치 국물 냄새가 나지만 달달한 향기는 올라오지 않는군. 달걀이 한 알, 오뎅이 3개 정도, 나머지는 떡과 국물이다. 사진 찍고 멀뚱멀뚱 보고 있으니 주인 할머니가 오셔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신다. ‘우리 떡볶이는 떡이랑 오뎅을 잘게 잘라서 국물이랑 같이 떠먹는 거예요. 아, 계란도. 응?’ 뭐 분식집 냉면 국물에는 노른자를 풀어 먹기도 하니…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는데. 와… 이거 진짜 ㅋㅋㅋㅋ 나 거짓부렁 안치고 솔직히 얘기한다. 처음 두 숟가락은 진짜 '음... 그만 먹고 얼른 가서 갈비 먹을까' 싶더라. 국물이 이래 뻘건데 뭐가 이렇게 밍밍하지? 간이 짜다고는 하기 그런데 또 심심하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멸치 육수 향에 살짝 매운맛만 나는 이 애매함은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할머니가 당뇨가 있어서 음식을 이렇게 하시나?

이제야 깨달았다. 아. 저 떡이랑 계란들을 가위로 좀 더 잘게 조사야 더 맛있겠구나

음… 그런데 조금씩 떠먹다 보니… 어? 어! 이거 뭐지? 뭐지! 계속 떠서 입에 밀어 넣는 나를 발견했다. 어 이거 첨엔 엉망인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하네. 배고픈데 1인분 더 시킬까… 이렇게 떠먹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계속 와서 1인분씩 포장해가고… 

한 10분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그릇은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드라이로 말린 것처럼 싹 비워졌다. 아… 여기에 단무지 한 종지 나왔으면 진짜 잘 어울리겠다 생각하면서 물 한 컵 마시고 벽을 보니, 진짜 이 가게 떡볶이와 잘 어울리는 문구가 벽에 걸려있다. 

캬~ 명문장이다. 둘이 먹다 하나도 모르는 맛이라니!!

캬… 저 문구 쓰신 분 찾습니다. 설마 사장님인가요? ‘둘이 먹다 하나도 모르는 맛’. 와… 이 집 떡볶이의 맛을 글자로 만들어 주물주물 하면 정확히 저 문장이 나오지 않을까?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은 뒷맛으로 입을 다시며 가게 밖을 나오니 파란 대문을 향해 적지 않은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그 대문으로 들어가더라. 


아니 주인 할머니. 떡볶이에 무슨 마약을 넣으셨어요? 신기하네… 내 생전 이렇게 밍밍하고 달지 않고 짜지 않은  떡볶이는 처음이다. 그런데 나는 다음날 점심 파란 대문 떡볶이를 생각하며 집에서 멸치국물 국물 떡볶이를 최대한 심심하게 끓였다. 역시 실패. 원조를 따라갈 수는 없군. 이 떡볶이를 먹은 후 1주가 지난 지금, 나는 둘이 먹다 하나도 모르겠는 그 떡볶이를 생각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정확히 평양냉면의 기작과 똑같다. 저거 레시피가 뭐지….

이 집은 금요일 하루 빼고는 평일과 토요일 11시 30분, 일요일 10시 30분에 문을 여니 근처 갈 일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 들러보자. 간판 따위는 없고 지도 앱에 '신석초등학교 후문'을 검색하고 파란대문 있나 두리번거리며 찾다 보면 이 집에 다다를 수 있다. 

떡볶이 단일 메뉴 1인분 3천 원 되시겠다. 평양냉면 스러운 떡볶이인 만큼 일부러 가보라고는 추천하지 않는다. 참, 이런 집 갈 때는 반드시 현금 준비하는 거 알지? 이 집은 계좌이체도 안된다는 점 기억해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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