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을 관통하는 전체 주제를 생각해보다가...
여기 한 아이가 있다. 악마의 저주로 얼굴에 기이한 혹을 달고 태어났다. 그 혹은 가만히 두면 점점 커져 아이의 몸과 영혼을 잠식해, 그 아이는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괴물로 자라날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력 있는 주술사가 주먹만 한 그 아이의 혹을 떼어내면, 잠깐 혹 안의 나쁜 기운이 빠져 1주일간 마을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지만 그 아이는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고통받는 사람들도 조금씩 후유증은 남겠지만 그것에 적응하며 다시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이 주술사라면 여러분은 그 아이의 혹을 떼어내고 그 아이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를 희생시켜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나눠가질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겠는가?
‘소수의 희생으로 야기하는 다수의 최적의 행복 Vs. 다수의 양보로 이뤄지는 모두의 최선의 행복’은 종종 우리 사회에서 도마에 오르는 주제다. 그 주제를 시작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책 중 ‘퇴마록’ 같은 통속 소설도 없을 것이다. 퇴마로의 다섯 주인공 박 신부와 현암, 승희와 연희, 준후는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위협하는 악령과 싸움을 벌이며 퇴마행을 이어나간다.
국내편과 세계편, 혼세편과 말세편을 지나 외전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악령을 넘어 고대의 신이나 악마와도 싸움을 벌이지만 항상 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인간이다. 와불을 일으켜 일본에게 그릇된 복수를 하겠다며 퇴마사를 배반한 한국의 도사들, 악마와 손잡아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블랙 서클의 총수 마스터, 초능력을 가진 괴물이라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국제 조직과 인터폴, 박 신부의 기적을 시기하고 질투해 악마에게 놀아나는 프란치스코 교주, 아직 악마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그들을 믿지 못하는 바이올렛… 언제나 하나의 생명이라도 지키겠다며 사서 고생하는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귀신도 악마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두 함께 살기 위해, 하나의 생명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자신이 라미드 우프닉스라는 것을 알고 죽어가는 연희부터 총에 맞아 죽는 현암과 승희, 절대 이길 수 없는 드라큘라의 두목과 맞붙어 죽은 박 신부까지 차례로 죽어가며 악마인지 모를 작은 아기를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다. 준후 역시 검은 바이올렛의 배속에서 올라오는 음산한 기운에 몸서리를 치지만 끝까지 선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살려내며 눈물을 흘린다. 이들이 내내 외치는 주제는 단 하나다.
조금씩 나눠서 아파하고, 모두 함께 살면 안 될까?
자, 이제 당신은 혹 달린 소년을 살리겠는가? 그를 희생해 당신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덜겠는가?
‘너 하나만 양보하면 우리가 모두 편해져’, ‘아 왜 모두 좋다고 하는데 저기서 고집을 부리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 종종 듣거나 하게 되는 말이다. 물론 한 명의 별 이유 없는 강짜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게 나라면, 내 신념이 무너진다거나 내 신상에 지장이 없는 한 양보해 주는 것도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너’라 지칭하는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면, 한번 먼저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해 고민한 후 다음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 일인 듯싶다. 우리 조금씩 양보하고 함께 행복하면 안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