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잠시 보지 않게 된 이유
요 몇개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워낙 청개구리 기질이라 첨에는 너무들 여기저기서 말이 많아서 안 봤는데, 2020년 5월 갑자기 미쳐서 제주도 연돈 앞에서 밤을 새 다녀온 이후로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공덕동 ‘경복식당’ 백반 먹으러 가서 줄도 서봤고 집 근처인 노가리찜 집에 가서는 친한 누나와 소주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골목식당에서 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전부터 프로그램 말미 광고를 통해 청년 창업자들을 모집해 제주에 식당을 차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꾸준히 알려왔다. 지난 8월 25일부터는 총 8팀의 예비 청년 창업자들들이 그 목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그 장소부터 흥미롭다.
이번 식당 오픈 대상이 되는 금악은 제주 서쪽에서 구석으로 들어온 금악리 마을이다. 제주 여행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해안가를 따라서 빼고, 제주 내륙은 그렇게 발전된 곳이 없다. 몇몇 유명한 오름이나 골프 코스 빼고는 기반 시설은커녕 식당 조차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 예전 브런치에 제주 자전거 투어 #2: 3번의 고백, 어쩌다 북콘서트에서 짜장면 먹은 이야기를 썼는데, 여기가 금악보다는 조금 그래도 바닷가에 가까운 한경 부근에서 일어난 일이다. 진짜 뭐 근처에 밭 빼고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미 백종원은 ‘냉면 랩소디’라는 넷플릭스 다큐에서 금악리 주민들과 손을 잡고 식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선례가 있다. 제주도는 한국의 월동무 대부분을 책임지는 곳이고, 특히 금악리는 무 산지로 유명한데 백종원이 아이디어를 내 금악의 무로 짠지를 만들고 금악리의 대규모 돼지 사육단지에서 나온 돼지고기를 이용한 육수를 내 고명을 얹은 냉면으로 금악리 마을 회관을 ‘금악 무짠지 냉면’ 식당으로 탈바꿈시켜 주민들에게 선사했다. 그 가게는 백종원 프랜차이즈가 아닌 금악리 마을 공동 명의로 운영된다고 한다.
아마 이번 백종원의 골목식당 ‘금악리 청년 창업’ 프로젝트는 이미 제주에 호텔을 운영하는 데다 ‘도두반점’ 등 제주도 한정 프랜차이즈도 운영하는 만큼,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백종원 프랜차이즈의 거부감도 없애는 동시에 (주)더본코리아의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금악리 청년 창업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나는 당분간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지 않으려 한다.
일단 2주간 진행된 금악리 청년 창업 프로젝트 방송을 보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더라. 참가자들의 사연에 감동했다거나 그들의 열정에 가슴이 웅장해지고 그런 건 아니고… 그들이 경쟁하는 것만 봐도 내 마음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장 불편했던 게 그 경쟁이었으니까...
회사를 다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내가 일을 잘하는데, 부당한 상사의 지적이나 갈굼 등 억울한 일을 당해 불편했다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혼자 해낼 수 있는 뚝딱뚝딱 잘 해결하고 팀으로 구성되어 내 역할을 받아하는 일은 잘 처리해도 내가 일을 리딩하는것에는 서툴렀던 전형적 외로운 늑대 타입 일꾼이다. 그러나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경쟁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회사에서 일잘하고 인정받는 사람이건, 일 못해서 헤메는 고문관이건 그 소리 없는 경쟁에서 받는 마음의 고통은 경중 차이지 누구나 존재한다. 백종원이나 김성주, 금새록이 뭐 틀린말을 하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보지는 않았어도) 유희열이나 이상순이 뮤지션을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평가를 받고 비교당한다는 그 사실 하나로도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밴드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고, 심지어 취미로 밴드를 하고 있는 내가 ‘슈퍼밴드’를 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끔 쭉정이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준비된 뮤지션들이 무대를 채운다. 특히 이미 난다긴다하는 예비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슈퍼밴드는 뭐 첫 방송부터 엄청난 연주를 선보인다고 들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밴드 ABTB의 기타리스트 황린 씨가 선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것이 내가 경연 프로그램을 챙겨보지 않는 두 번째 이유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난다긴다 하는 뮤지션들이 재단을 당하는걸 보고 있는건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니더라. 음악에 대해서 ‘CL’ 같은 비전문가에게 평가받는다는 사실도 참기 힘들고. 아, 그렇다고 CL의 엔터테이너적 가치를 폄하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CL이 연주나 작곡이 어떤 경지에 오른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런 프로그램을 보다가 참가자들에게 반하고 정이 들어버린다면 더욱 큰일이다. 그냥, 뮤지션들이 잔소리듣고 재단당한다는 느낌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는 팀이 잔소리 듣고 떨어지기라도 한다면…으…
그냥 앞으로 ‘슈퍼밴드’의 남은 기간동안 뮤지션들이 각각 최고의 기량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나름의 팬덤을 형성해 앞으로의 음악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금악리 청년 창업’ 프로젝트도 마찬가지. 얼른 경연 끝내고 창업들 하시면 내가 올 가을 다시 자전거 여행 가서 하루 머물면서 다 먹어줄테다. 모두, 마음 다치지 않고 즐겁게 경연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