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Oct 09. 2022

찰흑미를 선물받았습니다

냉장고 파먹기 #번외

냉장고 파먹기 번외

흑미는 유색미의 일종으로 속은 희지만 겉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라색을 띠는 쌀입니다. 흰쌀에 적당히 섞어 밥을 지으면 기분 좋은 보라색을 볼 수 있어요. 보통 5~10% 정도를 넣지만 조금만 많이 넣으면 밥이 새까매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죠.


오빠 음식 잘하잖아


제가 말아낸 김밥은 아닙니다.  (출처: https://lifeground99.tistory.com/115)

찰흑미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녀는 내가 만든 음식을 곧잘 맛있게 먹었는데, 찰흑미를 조금 많이 넣은 밥의 비주얼에 놀란 그녀가 자기보다 요리를 자주 해먹는 나한테 다시 선물한 것이죠. 내가 지은 첫 번째 흑미밥 역시 찰흑미를 조금 과하게 넣어 밥이 좀 까맣게 되었어요. 그걸로 말아낸 김밥 역시 그녀는 잘 먹더라고요. 그게 그녀와 두 번째 만남의 마지막 음식이었습니다.


2021년 10월에 만나,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그녀와 모종의 이유로 연락이 끊긴지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통화보다는 카톡을 좋아해 주로 문자로 대화를 나누던 텍스트는 떠나간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어요. 근 몇 달은 폐인처럼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 혼돈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많이 힘들더군요. 


나름 쳐놓은 벽은 카톡 한 번에 무너졌고, 난 어느새 그녀를 위해 따뜻한 타마고 산도와 포테이토 수프를 만들고 있었어요. 이후 저는 그녀와 전 같은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짓을 해버렸고, 또다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녀에게 받은 찰흑미는 무려 3kg. 쌀밥 1인분이 보통 150g. 찰흑미가 잘해야 15g 정도 들어가는 셈이니 하루 한 끼를 흑미밥으로 먹는다 해도 6개월은 꼬박 걸리는 양입니다. 잊으려고 아까운 찰흑미를 버릴 수는 없는 것처럼, 저도 이 감정을 소비해 내는데 또 한세월이 걸리겠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