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sand (Cover) - 델리스파이스
밴드를 할 때부터 계속 마음속에는 어떤 열망이 꿈틀거렸다. 뭐 더 연주를 잘하고 싶다거나, 그걸로 여자를 꼬시고 싶다거나 이런 건… 당연한 거고 말이야. 하핫~
아마 2001년이었나? 당시 이리저리 필요한 돈을 이리저리 제하면 수중에 한 15만 원 정도 여윳돈이 있었다. 당시 기타 연주자들에게 유행했던 기타 앰프 시뮬레이터, 속칭 엉덩이 앰프 ‘Line6 POD’를 사기에는 돈이 좀 모자랐고, 그 대체품인 ‘Behringer V-Amp’를 중고로 사들였다.
보통 일렉트릭 기타는 이펙터를 건 후 그 소리를 앰프에 연결해 마이크를 대고 녹음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정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냥 복잡하게 설명하기보다 이걸로 퉁치자.) 그렇게 하면 기타가 증폭된 소리를 앰프로 보내고, 그것이 스피커를 울리는 소리를 녹음하게 된다. 기타 앰프 시뮬레이터는 증폭된 소리가 스피커와 그것이 달린 ‘캐비닛’을 울리는 것까지의 소리를 모두 흉내 내 주는 장비다.
집에서 연습용 앰프로 연주하는 것보다, 이 앰프 시뮬레이터로 연주해 보니 진짜 소리가 실감 나더라고.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연주를 녹음해 보고 싶다!
하지만 여러모로 난 부족했다. 남들처럼 미친 듯이 연습을 한 것도 아니고, 내 연습 부족에 핑계를 대기에도 내 손은 최적이었다. (일상에는 전혀 지장 없지만, 새끼손가락 단지증이거든…) 다만 속주나 그런 게 아닌 ‘아름다운 연주’는 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걸 기록해 보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돈이 없었다. 잘사는 집 사람들처럼 부모님께 녹음할 수 있는 장비를 사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부모님께서 내가 기타 치는 걸 너무 싫어하셨고…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용돈 쓰기도 바빴다. 그런데 96학번인 나는 나름 ‘컴퓨터 세대’ 아닌가? 기타 앰프는 없지만, 내게 앰프 시뮬레이터가 있으니까… 이 소리를 컴퓨터로 바로 녹음할 수는 없나?
대학 동아리 선배들을 보니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는 걸 사서 거기에 앰프 시뮬레이터를 연결해 녹음한다는데, 그건 뭐 앰프 시뮬레이터 두어 대 값을 훌쩍 넘어가더라. 하지만 어딜 가도 길은 있지… 이래저래 검색하고 해외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비싼 사운드카드인데?
선배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보니, 반주를 깔고 녹음하려면 ‘멀티트랙 레코딩’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쪽팔리지만, 물론 불법으로…) 선배들에게 멀티트랙 레코딩 소프트웨어로 제일 유명했던 ‘Cubase’를 구해 컴퓨터에 설치했다. 일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레코딩 시작~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한데? MR과 메트로놈은 박자에 맞게 잘 플레이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맞춰 연주하면 내 소리는 한 0.7~0.8초가 지나서야 내 귀에 들리더라. 내가 ‘도, 레, 미, 파, 솔’ 연주하면 그게 바로 들리는 게 아니라 좀 있다가 소리가 나는 거지… 이것이 바로 레이턴시(Latency) 문제였다. 이래서는 박자를 맞출 수가 없잖아!
검색해 알아보니, Cubase는 소프트웨어가 꽤 무거운 편이라 고사양 컴퓨터와, 소리 처리 과정을 나눠 계산해 주는 고급 사운드카드나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필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검색해 보니, 멀티트랙 처리 기능이 있는 소프트웨어 중 ‘Vegas’라는 게 사양을 그리 타지 않으면서 레이턴시 없이 멀티트랙 녹음을 지원한다고 하더라.
설레는 마음으로 Vegas를 설치하고 녹음을 해보니, 오?! 정말 레이턴시가 거의 없네? 대신 Vegas는 음악용이 아닌 ‘영상용’ 소프트웨어라 MR 파일 등을 불러올 수는 있어도 MIDI 트랙을 얹어 MR로 쓸 수는 없더라고… 그런데 그래도 여기까지 고생하며 알아봤잖아. 뭔가 해보고 싶더라고. 그러던 중 당시 열심히 듣던 ‘델리스파이스’의 신보 에서 적당한 노래가 하나 귀에 들어왔다.
가만히 듣다 보니 시작부터 22초까지는 코드 두 개에 기타 없는 베이스와 드럼, 키보드의 메인 테마가 반복되더라. 보컬도 없고 말이야… ‘그래, 이거다!’ 앞부분을 박자에 맞게 톡 끊어 반복시켰다. 요즘처럼 BPM을 알기도 쉽지 않아서, 그냥 무한 반복으로 노래를 조금씩 잘라 가며 이 노래가 86 BPM인 걸 어부지리로 알아냈고… 거기에 맞게 샘플을 다듬고 반복시켜 MR 트랙을 만들었다.
22초가량의 샘플만 반복하자니 좀 심심해서, 녹음한 트랙의 앞부분 비트에는 0:00~0:22까지 EQ를 적용해 초저역과 저역을 줄여 빈티지 라디오 느낌을 더했다. 다행히(?) 소프트웨어 이펙터 플러그인 ‘VST’를 Vegas에서 사용할 수 있어, 기타 솔로에는 원곡처럼 BPM에 맞는 핑퐁 딜레이도 입힐 수 있었다.
0:21~1:00 정도까지의 솔로는 원곡을 카피한 것이고, 그 이후는 (지금처럼 AI로 보컬 트랙을 분리할 수 없어) 후반부 솔로를 토대로 내가 만든 라인이다. 지금 들어보니 필도 엉성하고 튠도 조금 나간 것 같고 말이야… 하나 확실한 건, 연습 겁나 안 하는 지금보다 두 배는 잘 치는 것 같다.
잘 맞는 밴드를 만났다면, 밴드에 방해되지 않도록 실력을 키우고 듣는 귀를 넓히는 일만 남는다. 귀를 넓히는 건 약간 다른 문제지만, 실력을 늘리는 건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들을 만한 연주’를 숫자 100으로 규정짓는다면, 50 정도까지는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재능이 없이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런 문턱을, 재능이 있는 사람은 너무 쉽게 넘나든다. 그래서 이 격언은 이렇게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노력은 재능과의 거리를 좁혀준다.
인정하자. 천재는 천재다. 자존심을 접자는 게 아니다. 그들을 인정하는 건 오히려 그들에 근접하려는 노력의 첫걸음이다. 그들에게 가까워지는 연습의 지름길은 바로 ‘녹음’이다.
드럼이나 베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악기를 연주하는 데 칼박은 중요하다. 연주가 톤과 필, 그루브가 아무리 좋아도 박자가 흔들리면 말짱 꽝이다. (박자가 흔들리면 솔직히 그루브는 개뿔, 필도 엉망이지 뭐…) 녹음 연습은 그런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이렇게 거창하게 떠들고는 있지만, 정작 나조차도 녹음 연습은 요 몇 년 거의 못 하고 있다. 앞으로 그동안 내가 문득문득 녹음한 연주를 올리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조악한 사운드가 내가 20년 가까이 연주하면서 가장 기분 좋았던 파일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연습도, 연주도 좀 더 열심히 하자. 저작권 협회에 등록도 하고…
P.S) 그냥 순수한 바램으로, 이 글을 꼭 '델리스파이스'의 베이시스트 윤준호 님이 봐줬으면 좋겠다. <Quicksand>를 녹음하기로 한 건, 사실 베이시스트 윤준호 님의 베이스라인이 마음에 들어서기도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