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밴드의 첫 번째 고비: 선곡

원래 식당에서도 메뉴 고르는게 제일 힘들잖아요

by Francis

자 이제 ‘밴드는 새로 뽑은 멤버에 대한 책임이 있어: 기존 구성원 편’처럼 고심해 밴드 멤버가 확정되면 이제 바로 행복한 밴드 생활이 시작되리라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취미 밴드에게는 ‘밴드 파괴자’로 악명 높은, ‘선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로 만든 팀이라면 함께 연주할 노래부터 정해야 한다. 이미 활동하던 팀에 새 멤버가 합류했어도 기존의 세트리스트를 정리하는 동시에 새 멤버가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에 대해서도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가껏 만들어놓고, 선곡 과정에서 밴드가 깨지는 경우도 종종 봤다. 대부분 멤버간 과욕과 소통 미스 때문이다.


회식을 하게 되면 횟집이나 고깃집, 호프집 등 함께 갈 식당이나 술집을 정한 후 현장에 가서 안주와 술을 시키게 된다. 보통 테이블 별로 각자 먹을 것을 시켜 테이블 별로 회식을 즐기거나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1차, 2차의 메뉴를 사람들이 원하는 메뉴에 맞춰 배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무리의 리더나, 흔히 방귀 좀 뀐다는 오지라퍼가 알아서 안주를 정해 일괄적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회식 때마다 오지라퍼의 입맛대로 음식을 먹게 되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취미 밴드의 선곡 과정은 이것과 다를 바가 없다.


프로 밴드면 그럴 일이 없지만, 취미 밴드는 스타일에 맞지 않는 노래를 골라서 생기는 트러블이 가장 많을거 같다. 새 멤버를 뽑을 때, 밴드건 멤버건 서로의 음악적 성향을 확인하는 단계는 거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노래를 고를 때는 의견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내 예를 들어보자. 라디오로 팝 음악을 들으며 커온, 음악이 그냥 좋은 사람이지만 메탈리카와 익스트림을 동경하며 기타를 쳐온게 나다. 그런데 보컬은 노래방에서 꿈을 꾸던 사람, 드러머는 원래 키보드가 꿈이었댄다. 베이스와 키보드는 개신교 워십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하고… 계기도 쵀대 곡도 모두 다르다 보니, 멤버들이 같이 합주하자고 내놓는 곡은 "김건모, 뮤즈, 스타세일러, AC/DC, 장범준, 마이앤트메리… " 그야말로 제각각 중구난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하면 안되는 이야기가 세 가지 있다.


1. 이거 너무 구린데?
2. 이건 우리 스타일 아니잖아?
3. 그거 우리 못해.

밴드마다 목표로 하는 스타일이 있다. 쟁글 쟁글 기타팝, 두둠칫 디스코, 저전전전 헤비메탈, 쿵치딱 애시드 등 밴드의 스타일 지향점에 맞게 선곡해야 하는건 맞다.


가차 없는 프로팬드와는 달리, 취미 밴드는 조금 달라야 한다. '구리다'는건 그냥 욕하는 말이고 일단...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말로 단칼에 끊는 것은 자칫, 싸우자고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냥 한 번 연주해 보거나 밴드 색깔에 맞게 리메이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능성을 열고 들어 본 후 의견을 말하는 게 기본 아닐까? 악기가 없거나 너무 고난이도 테크닉이라 힘든 노래들은 미리 걸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래를 들고 왔어도 일단은 편곡이나 전조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7C9DE307-B81E-4E87-A6FD-816CB5E5C937-5106-00000436F8390E7C.JPG 서로 너무 세게 주장하지도 말고, 밴드 원들이 싫어할 여지가 있다면 한 발 물러나는 운영의 묘도 필요하다

밴드 분위기와는 좀 동떨어졌거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을 추천한 멤버 역시, 팀원들이 시큰둥해도 화를 내는 것은 좀 아니다. 사전에 노래를 공유해 한 명씩 의견을 들어보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른 멤버들도 그걸 막무가내로 무시하면 안되고...


펄잼의 에디 베더가 라이브에서 딸내미 들으라고 ‘Let It Go’를 부르기도 하고 자코 파스토리우스도 갑자기 ‘Smoke On The Water’를 연주했었다. 예전에 하던 밴드 ‘허밍 데이즈’에서도 여자 보컬이 당시 인기던 영화 ‘너의 이름은?’의 <なんでもないや>라는 노래를 꼭 하고 싶다고 추천해서 멤버들 간의 동요가 좀 있었다. 키도 많이 바꾸고 악기들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괜찮은 사운드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Take On Me>를 스카 버전으로 연주하기도 했고. 어차피 공연때 세트리스트에서 빠질 수도 있지만, 취미 밴드라면 일단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는게 내 생각이다.


원하는 거 한 곡씩 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기계적 평등은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다. '선곡은 공평해야해!'라며 기간을 두고 멤버당 한 곡씩 추천받아 무조건 하는 팀은 오래 가지 못하더라. 얼핏 공평해 보여도, 자칫하면 음악도 산으로 가고 스타일도 안나온다. 공평은 커녕 불만만 늘어날 수 있다는거지.


하지만, 멤버당 한 곡 정도 ‘까방권’을 하나씩 주는 정도는 시도해 볼 만 하다. 1년에 한 곡 정도는 토 달지 말고 무조건 진행할 수 있는 권리를 멤버 당 한 곡씩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하고 싶은 곡에 대한 갈증도 줄일 수 있고 의외의 레퍼토리를 발굴할 수도 있다. 대신 까방권을 쓴 사람은, 한 번 합주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GG를 치는 미덕을 보여줘야 한다.


IMG_1501.JPG 100% 즐거우면 좋겠지만, 80%만 마음에 들어도 성공한 밴드 아닐까

이야기가 장황했다. 결론은 서로 욕심을 줄이자는 거. 또, 불편하지 않도록 매너 소통하는 당연한 것을 서로 지키면 될 일이다. 소통만 원활하고 말 조심만 한다면 노래를 모두 보컬 성향에 맞추건 리더 한 명이 곡을 다 정하건 크게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원래 별스러운 일로는 잘 싸우지 않는다. 그걸 해결하면 끝날 일이니까. 대부분의 싸움은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데서 일어난다. 함께 하는 게 밴드인 만큼, 서로 소통하는 데 기본만 지키면 된다. 그냥 즐겁기 위해 하는 게 밴드가 아니다. ‘서로 함께’ 즐거우려고, 우리는 밴드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지션 별 빌런 멤버.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