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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Jan 16. 2021

취미 밴드의 첫 번째 고비: 선곡

원래 식당에서도 메뉴 고르는게 제일 힘들잖아요

자 이제 ‘밴드는 새로 뽑은 멤버에 대한 책임이 있어: 밴드 편’처럼 고심해 밴드 멤버가 확정되면 이제 바로 행복한 밴드 생활이 시작되리라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취미 밴드에게는 ‘밴드 파괴자’로 악명 높은, ‘선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로 만든 팀이라면 함께 연주할 노래부터 정해야 한다. 이미 활동하던 팀에 새 멤버가 합류했어도 기존의 세트리스트를 정리하는 동시에 새 멤버가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에 대해서도 의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선곡 과정에서 밴드가 깨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대부분 멤버 각자의 과욕과 구성원들 사이 소통 미스에서 일어난다.


회식을 하게 되면 횟집이나 고깃집, 호프집 등 함께 갈 식당이나 술집을 정한 후 현장에 가서 안주와 술을 시키게 된다. 보통 테이블 별로 각자 먹을 것을 시켜 테이블 별로 회식을 즐기거나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1차, 2차의 메뉴를 사람들이 원하는 메뉴에 맞춰 배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무리의 리더나, 흔히 방귀 좀 뀐다는 오지라퍼가 알아서 안주를 정해 일괄적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회식 때마다 오지라퍼의 입맛대로 음식을 먹게 되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선곡 과정은 이것과 다를 바가 없다.


멤버들이 밴드 스타일에 맞지 않는 노래를 골라서 생기는 트러블이 가장 많다. 밴드를 만들 때나 오디션을 봐서 새 멤버로 들어왔을 때, 밴드와 멤버들의 음악적 성향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선곡 과정을 거치다 보면 충분히 알고 있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멤버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생긴다. 


나만 해도 라디오로 팝 음악을 들으며 커온 음악 마니아지만 메탈리카와 익스트림을 동경하며 기타를 쳐온 세대기도 하다. 노래방에서 꿈을 키운 보컬, 키보드를 치고 싶었던 드럼, 개신교 워십을 통해 악기를 시작한 키보드와 베이스 기타…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다르고 최애 곡도 다른 멤버들이 같이 합주하자고 내놓는 곡은 "김건모, 뮤즈, 스타세일러, AC/DC, 장범준, 마이앤트메리… " 그야말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멤버의 추천곡을 듣고 이런 말은 내뱉으면 안된다. 


그거 나 못해.이거 너무 구린데?
이건 우리 스타일 아니잖아?

밴드마다 목표로 하는 스타일이 있다. 쟁글 쟁글 기타팝, 두둠칫 디스코, 저전전전 헤비메탈, 쿵치딱 애시드 등 밴드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중심으로 곡을 선정하고 연습을 해 나가는 것은 밴드에 가입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동의한 것이니 노래를 고를 때 최대한 그 스타일과 밴드의 악기 구성에 맞춰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다. 


사실 프로 밴드라면 애초에 모인 목적에 맞지 않는 선곡이나 작곡은 가차 없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취미 밴드에서는 조금 달라야 한다.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은 싸우자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그냥 한 번 연주해 보거나 밴드 색깔에 맞게 리메이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능성을 열고 들어 본 후 의견을 말해보자. 밴드 멤버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악기가 없거나 너무 고난이도 테크닉이라 힘든 노래들은 미리 걸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래를 들고 왔어도 일단은 편곡이나 전조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서로 너무 세게 주장하지도 말고, 밴드 원들이 싫어할 여지가 있다면 한 발 물러나는 운영의 묘도 필요하다

밴드 분위기와는 좀 동떨어졌거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을 추천한 멤버 역시, 팀원들의 분위기가 좀 시큰둥해 보여도 빡치거나 실망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들어야 한다. 분위기가 쌔~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노래를 공유해 한 명씩 의견을 들어보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다른 멤버들 역시 연주가 불가능하거나 너무 어색하지 않은 한에서 한 번쯤 시도해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들어보는 것도 좋다. 


펄잼의 에디 베더가 라이브에서 딸내미 들으라고 ‘Let It Go’를 부르기도 하고 자코 파스토리우스도 갑자기 ‘Smoke On The Water’를 연주했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밴드 ‘허밍 데이즈’에서도 여자 보컬이 당시 인기던 영화 ‘너의 이름은?’의 <なんでもないや>라는 노래를 꼭 하고 싶다고 추천해서 멤버들 간의 동요가 좀 있었다. 키도 많이 바꾸고 악기들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괜찮은 사운드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Take On Me>를 스카 버전으로 연주하기도 했고. 어차피 공연때 세트리스트에서 빠질 수도 있지만, 취미 밴드라면 일단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기계적 평등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다. 선곡을 공평하게 한다는 이유로 한 분기 기간을 두고 멤버당 한 곡씩 추천받아 그 곡을 무조건 연주한다는 규칙을 세워 운영하는 팀을 본 적이 있다. 얼핏 보면 공평해 보이지만 이게 자칫하면 음악 스타일 잡기도 힘들 뿐더러, 공평은커녕 멤버 모두가 각기 다른 불만을 가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멤버당 한 곡 정도 ‘까방권’을 하나씩 주는 정도는 시도해 볼 만 하다.  1년에 한 곡 정도는 토 달지 말고 무조건 진행할 수 있는 권리를 멤버 당 한 곡씩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하고 싶은 곡에 대한 갈증도 줄일 수 있고 의외의 레퍼토리를 발굴할 수도 있다. 대신 까방권을 쓴 사람은, 한 번 합주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GG를 치는 미덕을 보여줘야 한다. 


100% 즐거우면 좋겠지만, 80%만 마음에 들어도 성공한 밴드 아닐까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이 모든 건 서로 욕심을 줄이고 불편하지 않도록 매너 소통하는 당연한 것을 서로 지키면 될 일이다. 서로 소통만 원활하고 서로 배려하며 대화를 나눈다면, 노래를 모두 보컬 성향에 맞추건 리더 한 명이 곡을 다 정하건 크게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원래 별스러운 일로는 잘 싸우지 않는다. 그건 그냥 그 별스러운 걸 해결하면 되니까. 대부분의 싸움은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데서 일어난다. 함께 하는 음악생활이 밴드인 만큼, 서로 배려하고 소통에 조심하면 될 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자. 그냥 즐겁기 위해 하는 게 밴드가 아니다. ‘서로 함께’ 즐거우려고 우리는 밴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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