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가 느낀 '경애'의 마음인 줄 알았다.

김금희(2018). 경애의 마음. 창비

by 길문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하기는 했다. 이금희 아나운서도 아니고 김금희 작가라니. 어느 날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했다는 기사를 본 후 더 궁금해졌다. 저작권 양도와 그 기간에 대한 반감으로 대부분 작가들이면 받고 싶었던 문학상 우수상을 거부하다니. 그런 배포 큰 작가가 누굴까?


이게 문단에서는 꽤 큰 사건으로 알려졌나 보다. 지난 사건. 신문이었다면, 누렇게 변한 종이에 실렸을만한 기사였을 텐데, 인터넷 시대다 보니 생생하다.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다. 그저, 입력 날짜와 수정 날짜만 다르게 보일 뿐. 이게 다다.


그러고 보니 올드 한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겐 올드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분명 옛날에 벌어진 일인데, 지금 알아보니 벌어진 일 그 자체는 과거지만 그 '의미'만큼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읽는 사람이 올드 해진 것만 빼면 말이다.


장편이라서, 단편 집보다는 글쓰기가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호흡이 길어서 끝까지 어느 정도 긴장해야 하거늘. 이게 장편의 묘미긴 하다. 350페이지가 빡빡하게 들어가서, 첫 페이지를 넘기는데 좀 불편했다. 착각했나? 플롯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를 길게 늘려 장편으로 만들다니. 칭찬하는 말이니 오해 없기를.


제목이 '경애의 마음'이라서, 이게 경애가 느낀 마음인 것처럼 자꾸만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도 경애인 것처럼 느껴지고.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덮어서야 주인공 상수가 느낀, 경애의 마음이 이럴 것이라는 거였다. 이게 경애의 마음이었구나. 그랬을 거란 상수의 생각이 전한 경애의 마음. 그럼, 상수의 생각? 이건 어디까지나 죽은 은총과 결부된 것이 경애만이 아니기에. 상수도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기에.


그럼 주인공이 상수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상수의 이중생활로 인한 경애에 대한 미안함. 그 마음을 알아버렸기에 말이다. 경애. 그 주인공의 상처. 이게 뭐였을까? 작가란, 소설가란 정말 신통방통한 사람 같다. 신통하고 박통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1999년 10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을 헤집고 헤집어도 없었던 내용. 56명이 죽은 대형 참사라니. 작가란 지난 사건을 잊힌 사건들 속에 한 인간을 투입해서, 그 인간이 얼마까지 어떻게 버티나 보는. 어떻게 보면 잔인하기도 한. 그냥, 잊혔으면 했던 일들 일 수도 있는 사건을 기술해서 기억하게 만들다니.


"그것은 10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 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는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경애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같이 울었던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


뭔가 이중생활하면 음험하고 음산한 느낌을 주는 것 같은데, 남자인 상수가 여자인 척 여자 연애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 주는 사이트 '언니는 죄가 없다'를 운영한 것만큼은 잘못, 이때의 잘못은 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죄라고 하기에는 아리송한 죄를 진 것은 맞다. 단지, 잘못한 건 빼박이다. 그런데, 그 상담자 중에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 경애가 있다는 것과 그 경애가 기억하는 어느 깊은 가을날 이별을 한 그가 죽고 세상에 없다는 것. 그것을 다 알고 있던 상수의 마음이란. 그러고 보니, 경애의 마음이란 상수의 마음인 것과도 같은 '마음.' 그게 상실이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소설은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죽은 자 은총과 그를 마음속에서 기리는 산자 경애, 그 은총과 8밀리 테이프로 엮여있는 상수. 죽은 은총에 대한 미안함을 간직한 체 살아가는 경애의 마음을 알고 있는 상수의 마음. 미성년자들을 받아들이고 영업해온 호프집에서 대량 피해자가 나오고, 그 배경엔 술집 주인의 비리와 부패, 이를 방조한 공무원과 경찰, 화재 당시 술값을 내라고 출입구를 막은 매니저, 사건 후 술집 주인은 CCM 가수로 간증하러 다니고. 시대 부조리가 이리저리 엮였음에도 그 시대를 살거나 살고 있는 여전히 가슴 아픈 그들의 마음이란.


이 책은 그 비극적 사건에 대해 단죄를 하기 위해,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그렇다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소설의 몫이 아닐 것이다. 비록, 당시 인허가 담당 공무원과 경찰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로운, 그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구호로 가득한 소설이 아니다. 그럼,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을 감내해야 했던, 희생자들과 같은 세대들이 겪는 아픔을 아주 잔잔하게 담아낸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이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유는, 소설이라고 달리 주인공들이 특별하게 묘사되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다. 경애도 그렇고 상수도 그렇고 은총도 그렇고 조 선생도 그렇고 반도미싱도 그렇고 베트남 묘사도 그렇고. 여기에 베트남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들 묘사도 그렇고. 어쩜, 작가는 경애라고 불릴 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읽고 다독이는 게 아닌지. 구수한 숭늉 같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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