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2020). 누가 봐도 연애소설. 위즈덤하우스.
우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방송에 나오는 변비약 광고 문구(유쾌, 통쾌, 상쾌)를 사용하려다, 경박한 것 같아 취소다. 이런 소설도 있구나. 이런 작가도 있구나. 복받은 사람. 5년째 한 달에 두세 편씩 꼬박꼬박 짧은 소설을 쓴다는데, 짧은 소설이라니. 단편을 말하나? 이걸 콩트(conte)라고 하겠지? 단편보다 짧은 글. 그런데, 소설이다.
아,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다니. 아주 다양한 주제와 인물로 세상을 예리하게 파헤치는데 따듯하다. 소설이라도 작가가 현실에 기반하니, 세상을 읽고 생각하고 토해내는 게 꼭 어렵고 진중하고 고통스럽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알려준 선물 같은 소설.
작가 이기호나 나나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눈을 어떻게 뜨느냐, 머리를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인간사. 품잡지 않아도 폼 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그게 우리 세상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이를 작가는 연애소설이라고 표현하던데, 방점은 소설에 가있지만 말이다. 세상과 연애하는, 거기 사는 외계인도 아니고 인간과 연애하는 작가라니.
"장소든 시간이든 단어든, 아끼는 사람이 글을 쓴다. 매일 글로 쓰다 보면 아끼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렇구나. 그래서 작가는 이 작업을 계속 해오는구나. 쓰다 보면 아끼는 마음이 들 텐데, 그 대상이 활자일까? 당연히 아니지 않나. 멍청하긴!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따듯한 시선을 갖춘 그는 확실한 건 별 볼일 있는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아니, 별 볼일 있게 만드는 사람이지. 이런 작업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아도, 미디어가 다뤄주지 않아도, 잔잔하게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 것 같다. 우리 사는 세상에 말이다.
글을 읽다 보면 글의 주제와 그와 관련된 제목이나 단어가 끊임없이 샘솟는데, 그는 틀림없이 수원지가 원천적으로 훌륭하다. 이제서야 이 작가를 알게 되다니. 어깨에 힘 팍 주지 않아도, 고독을 씹으며 세상 다 산 듯이 떠들어대지 않아도, 인간사 그리 심각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그려도 멋지게 만들어지는 소설들이라니.
누군가 좋아할 때 같이 아픔을 나누고자, 다행히 그게 독감이니까 망정이지, 여자친구 마스크를 빌려 간 초등학생. 그럼 같이 독감 걸리려나? 재난지원금이 나왔을 때 당신은 누굴 먼저 떠올렸을까? 그게 마누라님이건 부모님이건 애인이건, 돼지갈빗집 가서 돼지갈비 먹는 생각이라니. 공원에서 간혹 만나는 늘씬한 여성에게 썸을 위해 개(비숑)를 사서 접근하려다, 자신에게 안긴 강아지가 갑자기 소중해짐을 깨닫는 조금 소심한 남자라니.
치매가 온 후 유달리 돈에 집착하는 남편을 모시고(?) 병엔 길에 나선 아줌마가 겪을 수밖에 없는 소소한 일상이라니. 사내연애를 하는 남녀가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리던 차에 '너희들 사귀니?'라고 그냥 던진 부장의 말에 제대로 걸려든 남자친구 이야기. 사귀다 헤어질 때, 서로 물품을 주고받고 정리할 때 드러나는 남자의 마음이라니. 그러다 던지는 여자친구의 말 한마디. "넌, 너 편한 대로 기억하는 사람이잖아"와 같은 문구들.
그러고 보니 그저 그런, 누가 봐도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데, 주변에서 좀 더 들여다보면 그럴 것 같은 이야기들. 참, 작가의 상상력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다가도. 그렇지. 이게 보통 사람들 사는 거지하고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아련함. 찌질함은 아닌 것 같고, 그저 짠한 마음들이 통통거리고 문장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은 참 이랬지. 이런 거지! 그래서 말이다. 이제, 편의점 가서 1+1 물건을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집어와야겠다. 그게 편의점이나 제조사의 마케팅이라도, 너도 알고 나도 아니, 좀 더 세상에 당당해져야겠다. 씩 한번 웃으면서 말이다. 어쩐지 오늘 하루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