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나서 '맛'을 생각한 건 전적으로 이 책 때문이다. 읽고 나서 느낌이 묘했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하다 떠오른 단어가 쌉싸름하다였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무난한데였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크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듯한 내용들이라고 하기엔 뭔가 켕겼는데, 그래서 생각한 단어였다.
이런 소설이 이민자 소설일까? 그녀가 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인도인들이다. 소설을 읽는 내겐 낯설게 느껴졌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 인도인이 자주 나오던가? 나왔겠지. 읽지 않았을 뿐. 영국에서 출생한 벵골 출신 이민자의 딸.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그녀 삶 속에서 인도 대륙이 굳게 자리 잡은 것은 아마 그녀 부모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녀 스스로 인도 이민자로서 겪는 생활과 경험이 크게 강조하지 않았으면 했다는데, 읽는 사람들은 그녀의 바람을 쉽게 받아들였을 것 같지 않다. 작가가 쓰는 글이란 게 어차피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 수밖에 없기에, 작가가 하고픈 말은 특정 인종이나 문화를 다뤘다는 점을 넘어서 독자에게 주는 울림이 보편적인지 그 가치를 봐야 한다는 말일 텐데, 그렇다면 이 책은 성공했다.
여전히 카스트라는 신분제가 유지되는 나라. 지금 총리 나렌드라 모디는 카스트 제도에서 바이샤와 수드라 사이 간치 출신이라는데 간치? 그러고 보니 작가 줌파 라히리 부모는 어떤 계급 출신이었을까? 해외 이민이 가능할 정도면 신분이 높았을까? 이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미국 IT 기업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인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 그렇다고 국가가 부자인 나라는 아니고. 아직까지.
책 제목은《 축복받은 집》인데 제목은 Interpreter of Maladies(질병 통역사)이다. 이건 전적으로 국내 출판사가 판매 때문에 그랬을 텐데, 굳이 그랬을까 싶다. 단편들은 크게 자극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고 무난해서 무난한 듯 읽혔는데,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다. 이런 매력 때문에 소설을 읽은 것 같았다. 아니, 소설이기에 가능한 매력?
〈일시적인 문제〉. 5일 동안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단전이 되니 이건 정말 '일시적인 문제'다. 단전이라. 전기가 다시 들어오면 될 일. 그런데 이게 인간관계라면. 친구라도 서로 맞지 않으면 안 만나면 될 일. 그런데 부부 사이라니."슈쿠마는 자신과 쇼바가 침실이 세 개인 집에서 어떻게 서로를 피하는데 전문가가 되었는지 생각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서로 다른 층에서 보냈다"라는데, 이런 상태면 관계는 빨간불? 그 단전 시간 동안만 식탁에 앉아 나누는 대화는 어떤 내용? 이런 미묘한 긴장관계라니.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어리니까 사탕 과자를 좋아했을 테고. 그걸 올 때마다 챙겨주는 피르자다 씨는 파키스탄 출신이다. 밖에서 보면 종교가 다를 뿐. 그 나라가 그 나라일 텐데, 이 두 나라의 관계가 아주 적대적이다. 여기에 파키스탄이 두 개의 국가로 쪼개졌다. 동 파키스탄. 오늘날 방글라데시. 그 나라가 독립 전쟁을 벌이고. 동파키스탄인 다카에 아내와 일곱 딸을 둔 피르자디 씨를 바라보는 예쁜 소녀의 섬세한 감정선이라니. 그를 위해 기도하는,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기도하는 마음이라니.
〈질병통역사〉."그녀를 바라보았다. 남편도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는,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 버린 여인을 말이다." 이런 게 누군가 삶에 있어서 엄청 중요하겠지만, 읽는 독자는 그저 그랬다. 주중에 구라자트어 통역사로 병원에서 일하는 카파시 씨는 주말에는 관광 안내원으로 일한다. 미국에서 자라 인도로 여행 온 다스 씨 가족. 그의 와이프와 무슨 썸 타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그건 카파시 씨의 소소한 바람이었을 뿐. 다스 씨 부인은 자기 불륜과 그로 인한 사생아 출생을 굳이 카파시 씨한테 고백한 이유가 뭘까? 이건 드러나지 않지만, 그 과정을 아주 감질나게 그려간다. 아마, 작가가 여성이라서 사랑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서였겠지만, 인정할 건 카파시 씨를 조금 설레게 했다는, 그걸 독자가 느끼게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진짜 경비원〉. 가난이 뚝뚝 묻어 나오는 소설. 세면대를 공동으로 쓰는 입주민들이라니. 그 세면대를 1층에 설치했고, 이게 훔칠만한 물건이라서 누군가 훔쳐 가는 상황. 계단 청소를 하다 경비원이 된 84세 할머니라니. 그 할머니에게 닥치는 불행이란 게 그녀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대게, 불행은 그렇게 오지 않던가. 의도치 않게, 예고 없이. 그녀의 불찰이 아니었음에도, 평상시 뻥으로 가득 찬 허세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공동주택 입주민들은 그녀를 내쫓고 진짜 경비원을 고용하려는데, 훔칠만한 물건이 있는 공동 주택인지를 떠나 쫓겨나는 그녀가 그저 안쓰럽다. 그 나이에 닥칠 그녀 앞 인생이란 게 말이다.
〈섹시〉. 직장 동료 락스미의 사촌 언니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그 남편은 델리에서 몬트리올로 가는 비행기 옆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맞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무슨 영화 같은 얘기라니. 그러니 소설이다. 이를 듣는 미랜더는 소귀에 경 읽기 심정이다. 이건 남의 일. 그러니 불륜이지만, 자긴 로맨스다. 우연히 알게 된 유부남 데브와 사랑에 빠진다. 불륜이니 도덕이니 이게 귀에 들어올까. 바람남 데브의 아내가 인도에서 돌아옴으로써 그 짧은 로맨스는 막을 내렸다. 그사이 동료 락스미는 자기 사촌 아들 로힌을 그녀에게 맡기는데, 그 아이가 그녀에게 섹시하다고 말한다. 섹시라? 불륜남이 꼬실 때 하는 말과 같은 의미? 이 단편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센 아주머니의 집〉. 살아보지 않은 남편 믿고 자기 땅을 떠나 남의 나라에 사는 심정은 어떨까? 마음이 흠뻑 빠져들었던 것은 한때 다른 나라 가서 살고 싶었고, 시도했던 기억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떠나는 것보다 결혼을 해서 떠나는 게 불확실성을 하나라도 줄였으니 더 안정적이겠지만 그렇다고 낯선 도시에서의 정착이 주는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질까? 그런 그녀에게 집 장식과 생선요리는 하나의 탈출구였다. 그게 캘커타로 돌아가는 방편이 아니라서 문제지만. 아니지. 시속 80km로 16,000km를 운전해서 가면 해결이 될 것도 같다. 이게 안 되는 건 그녀에게 운전면허가 없으니.
〈축복받은 집〉. 힌두교 신자가 이사를 왔는데 온통 집안 곳곳에 기독교도였을 전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힌두교도와 기독교도라니. 이 간극은 태평양 넓이만큼 크다. 이건 남편 산지브와 아내 트윙클의 관계를 암시하는 은유다. 산지브는 인도 캘커타 출신. 이렇게 만난 부부. 그 차이를 드러내는 그리스도로부터 '축복'받은 집. 그 집을 보는 힌두교 신자라니. 아내는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고. 집들이하면서 느낀 이런 감정이라면 살아가면서 서로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비비 하라르의 치료〉. 제목을 보면 엄청난 상징이 숨어있는 듯한데, 약간 서글픔과 함께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내용. 이유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비비. 그 치료법이 결혼. 비비의 보호자 사촌 오빠 부부는 쓸데없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아 반대를 하고, 마침 애를 가진 그들 부부에게 발작을 일으키는 동생. 이런 게 가능할까 싶지만 인도 문화에선 가능할 것도 같다. 발작 치료법이란 게 결혼이지만, 이는 결국 섹스를 말하는 걸까? 그 결과로 아이를 임신하고 비비는 더 이상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뭐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그녀에겐 두 번째이자 역시나 마지막 대륙인 미국. 그러니 이건 그녀 얘기가 아니다. 아버지는 인도에서 태어난 것이다. 미국 생활이 그래야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 되는 것이다. 처음 도착한 미국에서 임시로 살게 된 집 집주인 크로포트 부인. 낯선 땅에 정착하는 주인공이 애틋하게 느껴지는데, 이러니 이민자 소설일 수밖에. 아내 말라는 생활이 안정된 후 돌아와 자식을 낳고. 다행히 아들 또한 첫 번째 대륙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순간, 지지직거리는 흑백텔레비전을 보며 "달에 미국 깃발 꽂혔어"라는 늙은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역시나 어떤 필연으로 선택하지 않은, 우연히 읽은 소설이 처음 읽은 후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서서히 일어나는 느낌이란 게 그래서 찾아낸 단어가 쌉싸름하다는 말. 아홉 편의 단편 모두 다 마음에 들었을까? 갑자기 내가 어느 순간 미국으로 공간을 이동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남편과 아버지와 아내가 잠시 된 것 같았다. 이랬을 것 같다는 느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다시 생각이 난 단어가 있었다. 좋은 소설이 뭘까? 좋은 소설 읽으면 항상 생각이 날 것 같은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