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간 날

담장 너머 베트남 7

by 길문

사파에 갔다. 갔으니 돌아왔지만 가는 날 순탄하지 않았다. 날씨도 꾸역꾸역 비까지 내렸다. 여행 전체가 틀어질 위기. 사파에 못 갔으면 전체 여행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대처했을까?


구름 여사 왈 오전 6시 30분까지 자기 여행사에 오란다. 그럼 그곳에서 G8 회사가 픽업해서 사파 행 G8 버스 타는 곳에 데려가 준다고. 처음부터 G8 버스 회사를 알려주면 그쪽으로 갔을 텐데. 이건 이곳 시스템이다. 따를 수밖에. 하노이에서 사파 가는 버스 터미널은 없다. 운행하는 회사에서 각각 출발한다. 도중에 노선이 맞으면 숙소에서 픽업도 해준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숙소에서 픽업받는 게 제일 좋다.

cpooPAYJfHaCJD2_RRSHAL276BI.JPG 안개와 비가 감싼 사파 전경/함롱산 전망대에서.

그날 해프닝의 시작은 새벽에 그랩으로 승용차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전 6시를 이미 넘겼다. 서호에서 하노이 시내 올드 쿼터로 들어가기 위해 부랴부랴 숙소에 요청해서 숙소와 거래하는 택시를 탔다. 이건 말 그대로 택시다. 미터기로 움직이는. 하노이에선 대게 미터기를 쓰지 않거나 우회해서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영업용 택시가 말썽을 부린다. 그래서 그랩을 이용하는 것이다. 엄밀히 그랩을 활용한 승용차는 택시가 아니다.


약속 장소에 가는데 운전사도 길을 헤맸고 시간은 벌써 6시 30분이 지났다. 서둘러 택시에서 내려도 비는 멈추질 않았다. 급하게 뛰어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워줄 픽업 차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망했다 싶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기다렸던 잠시 후 우리 앞에 약속된 픽업 차량이 섰다. 내린 운전사 왈, 쏘리!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치에 다다랐던 그때 욕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왔다. 끓는 분노와 다행이란 생각이 이렇게 교차하다니. 그저 감사했다. 그제와 어제 만나 뵌 하느님과 부처님 덕이다!

2lMfLoOSzNt-3JV7FEZDy9FsGxw.JPG 노란색 돔 건물이 선 플라자(이곳에서 판시판 모노레일이 시작된다/그 뒤가 함롱산. 통신탑 맞은편 전망대가 있다.

우리가 늦은 건 맞지만 픽업 차량은 더 늦었는데 늦었다고 출발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작 누구도 사파 가는 G8 버스 출발 시간을 정확히 모른다. 예약제라서 예약자를 다 태우는 것 같다. 그러니 출발시간에 약간 융통성이 생기는 것이다. G8 회사에서 출발한 이는 우리 포함 4명. 벨기에 남자와 이스라엘 여성. 가다 이곳저곳 들른 숙소에서 몇 명을 태웠는지 기억에 없다.


벌써 걱정과 근심은 날아갔고 관심은 처음 탄 침대버스에 쏠렸다. 침대인지 의자인지 이것저것 눌러보느라 생각이 달라졌다. 사파 가는 방법이 침대버스와 야간 기차 내지 그냥 리무진 버스밖에 없으니. 6시간 이상 리무진 버스에 앉아가는 것도 무리고. 야간 침대 기차는 시간이 맞지 않고. 이게 최선인 것 같은데 다행인 건 우리가 선택한 G8 버스가 최신형이었다. 다른 사파 행 버스보다 좋다고 알고는 있었다. 기대대로 깨끗했다. 에어컨 때문에 추웠다. 이것도 알고 있었다. 에어컨이 빵빵하다는 걸.

15I1fLamg69Hik__qjyC6HQKS58.JPG 다랑이 논과 판시판 가는 모노레일 궤도.

닌빈 가는 길과 다르게 북쪽 사파 가는 길은 풍경이 온통 녹색이었다. 올해 몇 번째 농사일까? 삼모작 한다던데. 주변이 논으로 이뤄진 풍경이 익숙해질 때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것 같았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고도가 높아졌다. 주변 논이 어느덧 흔적 없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다랑이 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고 싶었던 것이다. 피곤했던 기력은 선뜻선뜻 들었던 잠으로 보충하고 나니 기대했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 휴게소에서 들러 돈 내고 볼일 보고. 다시 버스 타고. 그러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에 논이 있을까 구경하다 보니 버스는 G8 회사 앞에 도착했다. 사파였다. 그렇게 시작한 사파 여행. 독립기념일만 아니면 숙소까지 드롭을 해준다던데. 독립기념일 연휴라고 서비스가 없어지다니. 투덜대다가 사파 직원 차량을 섭외해서 예약한 속소를 찾아갔다. 그렇고 그런 숙소겠지 하면서 배정받은 7층 문을 열던 순간. 사파였다! 이곳이 사파였다. 방 입구에 가방을 팽개치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렇게 보이는 경치라니. 사파가 베트남의 스위스라고? 사파는 그냥 '사파'지만 눈으로 본 경치는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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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호수/시내 전경/ 아래 왼편 선 플라자 건물.

차만 타면 어떻게든 자는 천성이라 문득문득 잠들었더니 다행히 피로감이 어디로 가버렸다. 그래서 대강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뭐가 급하다고? 하노이에서도 맞이했던 비가 여기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안개와 비와 푸른 풍광이 뒤섞였다. 여기에 구름까지 더해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디 갔다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우리가 머문 숙소가 사파 광장에서 가까웠다. 그 뒤가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성당 뒤편 산이 함롱산이다. 그렇다. 함롱산에 올라가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목표였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정상이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그들 표정이 예상밖이었다. 다 안다는. 우리도 그랬다는 표정! 알고 보니 내 질문은 정상이 어디였냐라는 것이었는데, 그들도 정상이 어딘 줄 몰랐던 것이다. 사진으로 봤던 시내가 내려다보인 포인트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 표정이 그랬을 수밖에. 그곳은 정상이 아니라 전망대였다. 정상은 전망대에서도 한참가야 나올 것 같았다.


이건 함롱산 등산안내도가 불분명했기에 서로 컨퓨징(confusing)을 만날 때마다 연발한 건데, 전망대? 그랬다. 날씨가 맑았다면 따봉이었을 그곳. 여기에 비에 안개에 구름에 읽지 못한 베트남 언어까지 더했으니 전망대 전망이 좋았을까만은 그래도 따따봉을 외친 것은 단어 '컨퓨징' 때문이다. 지금 걷고 있는 발걸음이 정상을 향하지 않음을 알아도, 실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이 흐릿하니 이것도 컨퓨징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도 앞으로 살아갈 날도, 위로하자면 우리 삶이 대체로 완벽하지 않으니 컨퓨징이지만. 이걸 제대로 깨달았는지도 컨퓨징이다.



사파는 해발고도 1650m에 위치한 작은 도시. 이곳에 위치한 판시판 산(3,143)에 오르려고 외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현지인들이 이곳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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